전례에서의 침묵- 2012년 홍보주일 심포지움(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주최) 발표문

전례에서의 침묵

“고요히 주님 안에 있어라. 믿고 있어라”(시편 36,7)

윤종식 디모테오 신부

의정부교구 소속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

들어가는 글

요즈음처럼 IT산업이 발달한 시대에 ‘침묵(Silentium)’은 잘 맞지 않는 용어처럼 생각될 수 있다. 예전에는 ‘이야기를 나누다’는 말을 할 때, 인격과 인격이 직접 얼굴을 마주 대하는 특성을 지녔다면 지금은 핸드폰을 통한 메시지와 통화를 포함하는 용어로 발전했다. 이렇듯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보통신 매개체가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외롭다’라고 느끼고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말을 할 상대가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 깊은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서 일 것이다. 그리고 매스미디어를 통한 많은 말들이 오히려 소음이 되어 귀를 멀게 하고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에 당황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상황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침묵과 말씀, 복음화의 길”이라는 주제로 풀어가고 있다. 참되고 보다 적극적인 소통은 바로 “침묵”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으며 또한 “침묵”은 복잡하고 다양한 자극과 정보들 사이에서 올바른 성찰과 식별로 이끌어 준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침묵에 대한 필요성과 강조는 현 교황 뿐 아니라 보편교회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특히, 전례와 연관하여 2004년에 교황청 경신성사성에서 “성체성사의 해: 제안과 권고” 28항은 “침묵”이라고 주제를 정하였다. “고요히 주님 안에 있어라. 믿고 있어라”(시편 36.7)의 말씀을 통해서 침묵은 “단순히 자기 비움이나 자기 부재를 뜻하는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시고 활동하시는 하느님 앞에 나아가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하느님께 응답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침묵은 그냥 입을 다물고 듣고만 있는 수동적 태도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 있음을 의식하고 그분을 받아들이고 그분에게 응답하는 능동적 행동일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그러나 이러한 침묵의 능동적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침묵 체험”임을 요한 바오로 2세의 전례헌장 반포 40주년 기념 교황교서인 “성령과 신부 Spiritus et Sponsa”(2003.12.4.)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 공동체 안에서 더 큰 노력을 기울여 장려하여야 하는 한 가지는 침묵 체험이다. 마음속에 성령의 목소리가 더욱 완전히 들려오게 하고 우리의 개인 기도가 하느님의 말씀과 교회의 공적 목소리에 더욱 밀접하게 결합되려면 우리는 침묵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침묵에도 교육과 수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그 모범으로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외딴 곳에 가시어 기도하셨던”(마르 1,35) 예수님을 말한다.

이글에서는 “침묵”에 대한 영성, 성서, 신학 측면도 있지만 “전례에서의 침묵”을 중심으로 다루며, 전례 역사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나온 전례예식서를 기본 문헌으로 다루고 그 특징들을 살펴볼 것이다.

1. 전례 헌장에서의 침묵: 침묵의 재발견

로마노 과르디니(Romano Guardini, 1885-1968)는 고요함을 “침묵하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고요함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해야만 찾아온다고 말한다. 이 고요함으로 인해서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자리,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고 한번 고요함을 체험하면 이것 없이 살 수 없을 것이라 한다. 그리고 외적으로만, 즉 말을 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것을 넘어서 생각, 감정, 마음까지도 평안함을 느낄 때 참된 고요함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과르디니는 전례에서의 고요함을 이렇게 말한다. “누가 만일 전례 생활이 무엇으로 시작하느냐고 묻는다면 고요함을 배우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톨릭교회는 초기부터 전례에서의 침묵을 중요하게 여겼고 전례의 한 부분으로 생각했다. 옛 로마 전례는 전례거행에서 개별적이고 고요한 명상과 현상을 주의 깊게 생각하여, 미사의 첫 부분이 끝나갈 즈음에, 백성과 성직자는 부제가 “flectamus genua”(무릎을 꿇읍시다)라는 초대에 잠시 개인 기도와 묵상의 침묵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부제가 “levate”(일어나십시오)라는 소리에 모두가 일어나면 사제는 소리를 높여 “oremus”(기도합시다)라고 했다. 이러한 기도 전의 침묵은 오늘날 성 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 중 보편지향기도에서 볼 수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의 구체적 양상을 다루면서 침묵의 중요성을 연관시켰다: “능동적 참여를 증진하도록, 백성의 환호, 응답, 시편 기도, 따름 노래, 성가와 함께 행동이나 동작과 자세를 중시하여야 한다. 또한 거룩한 침묵도 제때에 지켜야 한다.”(전례헌장 30항).

전례헌장 준비위원회의 위원이며 전례잡지 “Ephemerides Liturgicae”의 책임자였던 카를로 브라가(Carlo Braga)는 전례헌장을 해설하면서 능동적 참여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인해서 부수적인 것으로 다루어진  침묵에 대해서 아쉬움을 토로한다. “침묵은 말과 행동으로 한계를 지어 잘못 이해된 능동적 참여라는 이름아래 보다 소홀히 되고 전적으로 희생된 요소이다. 참된 참여에 대한 신자들의 준비와 능력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이 침묵은 의도적으로 잊혀졌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전례 사목의 성찰에 대해서 프랑스 주교회의 “미사 사목을 위한 규정”에서 볼 수 있다. 많은 신자들이 침묵의 순간들에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조사하면서 “이 경우 침묵의 순간에 보다 배려하지 않은 능동적 참여에 대해서 불완전하게 규정된 요구로 인해서, 해설들의 서술이 부족하여 생긴 일”(140항)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전례에서의 침묵은 “개인주의자들과 무형식주의자들의 모임의 무기력한 침묵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성가와 예비자교리로써 준비되고 양육되는 공동체적 침묵이다. 침묵은 기도의 정점이며 침묵의 질에 따라 참여의 노력을 가늠할 수 있다.”(141항)라고 개념을 말한다.

전례헌장 30항의 시안에는 침묵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그러나 회의를 거듭하면서 침묵의 중요성을 말하는 위원의 요구로 포함이 되었다. ‘능동적 참여’(participatio actuosa)를 중심 주제로 생각하며 전례쇄신을 하던 위원들에게도 능동이라는 개념을 ‘말’, ‘행동’ 그리고 ‘제스처’로 한정하는 경우들이 많아서 ‘침묵’이 크게 자리하지 못했다고 하겠다. 그러나 적어도 전례헌장 30항을 통해서 침묵이 전례의 한부분임이 증명되면서 전례쇄신 실행의 한 단계인 전례예식서 편찬에서 그 참된 의미를 드러내려는 노력들이 보인다.

2.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쇄신된 전례예식서에서의 침묵

침묵은 전례거행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부분임을 전례예식서들이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 지 알아보기로 하자.

전례헌장 준비위원회에서 발표한 ‘보편지향기도에 대하여 De oratione communi seu fidelium’(1966년)에서는 지향 사이에 적절한 침묵의 시간을 두기를 권고한다.

“행해진 기도 사이에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행해진 침묵을 통한 참여가 있다. 장엄 기도의 존중될만한 로마 전통에서 확인된 이 조용한 참여는 또한 덜 능동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놀라운 풍요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12항 b)

‘유아세례예식서’(1969년)에서는 강론 후의 침묵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성서의 한 곳 또는 여러 곳에서 뽑은 독서, 강론, 침묵, 보편 지향 기도, 구마의 뜻을 내포한 마침 기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곧 이어서 예비 신자 성유를 바르거나 안수를 한다.”(17항)

장례 예식서(1969년)의 고별식에서도 침묵은 고인과 유가족 그리고 참석자들에게 이별의 아쉬움과 영원한 생명의 희망을 깊게 느끼도록 유도한다.

“고별식은 사제의 권고로 시작하고, 잠깐 침묵의 기도가 계속된다. 성수를 뿌리고 향을 드리고, 송별가를 부른다.”(10항)

하루의 성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제 직무 중에 하나인 시간전례의 여러 부분에서 언급되어진다. 시간전례에서의 침묵은 말씀을 내재화하기 위하거나 기도를 더욱 심화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기도에 방해하는 경우라고 여기면 하지 않아도 된다. ‘성무일도 총지침’(1971년)은 이렇게 말한다.

“독서나 강론 후 잠시 침묵을 지키는 것도 좋다.”(48항)

“시편이 끝나고 한동안 침묵을 지킨 다음, 이 기도는 그 시편을 바친 이들의 정감을 하나로 묶어 끝을 맺는다.”(112항)

“청원기도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바칠 수 있다 사제나 주례자가 지향의 두 부분을 말하면 공동체가 일정한 응답으로 반복하거나 잠깐 침묵을 지키는 방법이 있고, 사제나 주례자가 지향의 첫째 부분을 말하면 공동체가 둘째 부분으로 응답하는 방법이 있다.”(193항)

“전례 행위에서는 일반적으로 ‘합당한 때에 거룩한 침묵을 지키는 일’에 유의해야 하기 때문에, 성무일도를 바칠 때에도 침묵을 지킬 여지를 부여해야 한다.”(201항)

“마음속에 성령의 목소리가 더욱 완전히 들려오게 하고 우리의 개인 기도가 하느님의 말씀과 교회의 공적 목소리에 더욱 밀접하게 결합되기 위하여, 적절한 경우에는, 시편 후 후렴을 반복한 다음에, 특히 옛적 관습에 따라 시편적 기도를 덧붙이는 경우에는 그 앞에(112항 참조), 독서나 성경소구를 한 다음에 또는 응송의 앞이나 뒤에 한 순간의 침묵을 삽입시킬 수 있다. 그러나 기도의 체제를 망가뜨리고 참석자를 당황케 하거나 싫증나게 하는 침묵의 순간을 삽입시키는 일은 피해야 한다.”(202항)

‘견진성사예식서’(1973년)에서 주교는 안수 전에 교우들에게 함께 기도하자고 청하고, 교우들은 침묵 중에 기도한다.

“교우들이 다 같이 잠깐 동안 침묵 속에 기도한다.”(24항)

‘아동미사지침서’(1973)에서도 침묵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종류의 예식도 아동들의 전례 교육과 교회의 전례 생활에의 준비를 위하여 유익하다. 인사, 침묵, 공동 찬미, 공동 성사 등은 그 자체로써 전례의 어떤 요소들을 아동들에게 쉽게 인식시킨다.”(13항)

“아동 미사에도 침묵은 예식의 일부로서 제때에 지켜야 하고 외부행동에만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아동들도 제 나름대로 묵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성체 후 또는 강론 후에) 정신을 집중하여 간단히 묵상하거나 마음속으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기도하도록 적당히 지도할 필요가 있다.”(37항)

“독서와 독서 사이에는 아동들을 위하여 선정한 시편 구절이나 다른 성가나 간단한 알렐루야를 노래한다. 언제나 아동들이 직접 한몫 들어야 한다. 혹은 노래 대신에 묵상하는 침묵으로 대치할 수도 있다.”(46항)

‘미사 없는 영성체 예식’(1973년)에서 영성체 후에 침묵이나 성가를 부를 것과 성체조배에 거룩한 침묵의 유익함을 말하고 있다.

“그 후에 경우에 따라 잠깐 동안 침묵을 지키든지 성가를 부를 수 있다.”(37항)

“성체 현시 동안에는 기도와 성가와 독서 등을 사용하여 기도에 열중하는 교우들이 주 그리스도만을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보다 깊은 기도를 도와주기 위해서는 성경독서와 함께 성체 신비를 더 잘 묵상할 수 있도록 해설이나 짧은 훈시를 겸한다. 신자들은 하느님 말씀에 노래로 응답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또 적당한 시기에 거룩한 침묵을 삽입하는 것도 유익하다.”(95항)

‘고해성사 예식서’(1973년)는 참회예식을 소개하면서 침묵의 시간이 언제 필요한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신자들이 모인 다음에 적합한 성가를 부른다. 이어서 사제는 신자들에게 인사하고 자신이나 혹 다른 사제가 신자들에게 참회예식을 간단히 설명해 주고 지켜야 할 순서를 일러준다. 다음에 함께 기도하자고 권고하고 잠시 침묵의 시간을 둔 다음에 기도를 마친다.”(23항)

“여러 독서를 낭독할 경우에는 화답송이나 적합한 성가나 혹 침묵의 여유를 가짐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그 말씀에 동감하도록 한다.”(24항)

“강론이 끝나면 양심성찰과 참된 통회를 위하여 넉넉한 침묵의 여유를 준다. 사제 자신이나 부제나 혹 다른 사람이 짧은 침묵이나 화살기도 등으로 참회자들의 조건과 나이 등에 알맞게 도와줄 수 있다.”(26항)

‘병자성사 예식서’(1975)에서는 침묵에 대한 구체적 언급 보다는 말을 하지 않음으로 생기는 고요함을 말한다.

“이어서 사제는 아무 말 없이 병자의 머리 위에 안수한다.”(74항)

‘미사 독서 목록 지침’(1981년)은 말씀 전례에서 행해지는 침묵의 순간들을 잘 알려준다.

“말씀 전례는 묵상에 도움이 되도록 거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마음을 모으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결코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느님과 인간이 나누는 대화에는 회중에게 맞는 침묵의 순간이 필요하다. 이때 하느님 말씀이 마음에 스며들어 기도로 응답하도록 준비시킨다. 말씀 전례에서 그와 같은 침묵의 순간은, 예를 들자면, 바로 말씀 전례를 시작하기 전에, 첫째 독서와 둘째 독서 다음에, 마지막으로 강론을 들은 다음에 알맞게 가질 수 있다.”(28항)

‘주교 예절서’(1984년)은 특이하게 제의실에서의 침묵을 언급하고 있다.

“예절지기는 제의실에서 침묵과 공손함을 유지하도록 관심을 기울인다.”(37항)

“[미사가 끝나고 퇴장하여 제의실로 돌아온 후] 모든 사람들은 주교와 함께 모두 십자가에 절을 한다. 그다음 공동 집전자들은 주교에게 인사하고 전례복장을 탈의한다. 그동안 봉사자들도 주교에게 절을 하고 전례 거행에 사용했던 도구들과 복장들을 치운다. 모든 사람들은 하느님의 집의 거룩함과 영신적 일치의 자세로써 경의를 표하며 침묵을 유지한다.”(170항)

‘축복 예식서’(1992)에서는 말씀 선포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참석자들의 믿음을 북돋아 주기 위해서 시편이나 성가나 침묵 등을 말씀 전례에 넣을 수 있다고 한다.

“첫 부분의 중심은 하느님 말씀의 선포이다. 그러므로 필요할 대 첨가되는 시작의 권고, 짧은 설명, 격려, 강론은 모두 이 하느님의 말씀과 관련시켜야 한다. 참석자들의 믿음을 북돋아 주기 위하여 시편이나 성가나 침묵 등을 사이사이에 넣는 것도 유익한 일이다.”(21항)

1969년 이래 세 번째 개정을 한 미사경본 총지침(2000년)은 예전보다 전례에서의 침묵에 대해서 더 강조하고 있다.

“주례자의 기도나 말은 그 본성 때문에 모든 이가 귀담아듣도록 크고 또렷하게 발음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제가 기도하거나 말하는 동안에는, 다른 기도나 노래를 하거나 오르간이나 다른 악기를 연주하지 말아야 한다.”(32항)

“앉아 있는 경우나 복음 전에 독서를 하는 동안, 화답송을 바치는 동안, 강론을 듣는 동안, 봉헌 예물을 준비하는 동안, 그리고 필요에 따라 영성체 후 거룩한 침묵을 지킬 때다.”(43항)

“거룩한 침묵은 거행의 한 부분이므로 제때에 지켜야 한다. 침묵의 성격은 저마다 그 거행에서 이루어지는 순간에 따라 다르다. 참회 행위와 각 기도에서 초대 다음에 하는 침묵은 자기 내면을 성찰하는 데 도움이 되고, 독서와 강론 다음에 하는 침묵은 들은 것에 대해 잠깐 묵상하는 데 도움을 주며, 영성체 후에 하는 침묵은 마음속으로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고 기도를 바치도록 이끌어 준다. 거룩한 예식을 경건하고 합당하게 거행하려는 마음을 지니도록, 전례 거행에 앞서 미리 성당, 제의실, 준비실과 그 둘레에서 침묵을 지키는 것이 좋다.”(45항)

“그다음에 사제는 신자들에게 참회하도록 권고한다. 이 참회예식은 짧은 침묵 시간을 가진 뒤 공동체 전체가 고백 기도를 바친 다음, 사제가 외우는 사죄경으로 끝난다.”(51항)

“이어서 사제는 백성에게 기도하자고 권고한다. 그리고 모두 사제와 함께 잠깐 침묵하는 가운데 자신이 하느님 앞에 있음을 깨닫고 간청할 내용을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그다음 사제는 흔히 ‘모음기도’라고 하는 본기도를 바친다.”(54항)

“하느님 백성은 침묵과 노래로 이 거룩한 말씀을 자기 것으로 삼고, 또한 신앙 고백으로 그 말씀을 깊이 간직한다.”(55항)

“말씀 전례는 묵상을 북돋우는 방식으로 거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마음을 모으는 데 방해가 되는 온갖 형태의 조급함을 반드시 피해야 한다. 또한 말씀 전례를 거행하는 동안 회중의 특성에 맞게 짧은 침묵의 시간을 두어야 한다. 이 시간에 신자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느님 말씀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기도로 응답할 준비를 한다.”(56항)

“강론 다음에는 알맞게 짧은 침묵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66항)

“백성은 서서 기도를 바친다. 그리고 봉사자가 각 지향을 말한 다음 다 함께 간구를 바치거나 침묵 가운데 기도하면서 청원을 드러낸다.”(71항)

“감사 기도는 모두 존경심을 지니고 침묵 가운데 귀담아들어야 한다.”(78항)

“사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유익하게 받아 모시도록 속으로 기도하며 준비한다. 신자들도 침묵 가운데 기도하면서 같은 준비를 한다.”(84항)

“성체 분배가 끝나면 필요에 따라 사제와 신자들은 잠깐 속으로 기도를 바친다.”(88항)

“성작을 닦은 다음 사제는 잠깐 침묵의 시간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고 나서 영성체 후 기도를 바친다.”(271항)

미사경본 총지침에서 침묵에 대한 그 밖의 언급들은 반복에 불과하기에 이곳에 적지 않겠다.

미사경본(2002)에서는 성금요일과 부활성야미사에서 침묵의 순간들을 알려준다.

성 금요일(Feria VI in Passione Domini)

“사제와 부제들은 미사 때처럼 붉은 색 제의를 갖추어 입고 제단 앞으로 나가 경의를 표한 다음 얼굴을 바닥에 대고 엎드리거나 무릎을 꿇는다. 모두 잠시 침묵 가운데에 기도한다.”(5항)

“보편 지향 기도로 말씀 전례를 마친다. 부제는 독서대에 서서 기도 지향을 알린다. 그다음에 모든 이가 잠시 침묵 가운데에 기도하고, 그다음에 사제는 주례석이나 제대 앞에 서서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11항)

“옛 전통대로 부제의 ‘무릎을 꿇읍시다’-‘일어납시다’를 계속 유지할 수도 있다. 무릎을 꿇을 때에는 침묵 가운데에 기도한다.”(12항)

“사제가 보로 가린 십자가를 들고 촛불을 켜 든 두 복사와 함께 제대 앞으로 나온다. 사제가 제대 앞에 서서 십자가 머리 부분을 벗겨 높이 쳐들고 ‘보라, 십자가 나무”(Ecce lignum)를 노래한다. 이 노래는 부제나 성가대도 할 수 있다. 모든 이는 ’모두 와서‘(Venite adoremus)로 화답한다. 이 노래가 끝나면 모두 무릎을 꿇거나 머리 숙여 잠시 (침묵 가운데에) 경배한다.”(15항)

“만일 회중이 많아서 한 사람씩 다 십자가 경배를 할 수 없으면, 일부 교우들이 경배한 다음에 사제는 십자가를 들고 제단 앞 중앙으로 가서 교우들에게 십자가를 경배하자는 권고를 짧게 하고 십자가를 높이 쳐들어 신자들이 함께 잠시 (침묵 가운데에) 경배하게 한다.”(19항)

부활성야(Veglia pasquale)

“독서자가 제1독서를 봉독하고 나면 성가대는 시편을 노래하거나 읊는다. 교우들은 후렴만 한다. 다음에 모인 이가 일어서고 사제는 ‘기도합시다.’하며 잠시 침묵 가운데에 기도하고 다음의 기도를 바친다. 시편 대신에 침묵을 지킬 수도 있다. 이럴 때에는 ‘기도합시다.’하고 침묵 없이 바로 기도를 바친다.”(23항)

침묵은, 미사 전부터 시간과 공간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하며 또한 미사의 중요 부분들 바로 전에 그 부분의 의미를 더욱 깊이 있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침묵이 다양한 형태로 전례 전반에 걸쳐서 자기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3. 전례 침묵 의미와 형태

지금까지 전례예식서들에서 언급된 침묵에 관한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기본적으로 침묵은 묵상, 신비, 성령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으며 이 연관성을 심화하기 위한 전례 요소로써 드러났다.

3.1. 기본적인 전례 요소로서의 침묵

침묵은 “거행의 한 부분”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조건이 있는 데, 신자들이 “마치 무관심하고 벙어리 관객 같이 전례 행위에 참석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어린이들도 “외부행동에만 치우치지 말도록” 해야 한다.

교육적 관점에서, 침묵은 전례 요소들 사이에서 어린이들이 교회의 전례 생활을 준비와 전례 양성에 유익한 요소이다. 이는 어른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침묵의 여러 긍정적인 측면들이 있지만 우려가 되는 부정적인 측면들도 있다. 이를 성무일도 총지침이 잘 말해주고 있다. 침묵을 삽입시키는 일이 “기도의 체제를 망가뜨리고 참석자를 당황케 하거나 싫증나게” 할 수도 있으며, “성무일도가 지니고 있는 공적 기도의 특성을” 잃게 할 수도 있기에 상황과 조건을 잘 살펴보고 해야 한다. 그리고 “거룩한 침묵은 거행의 한 부분이므로 제때에 지켜야” 본래의 긍정적 효과가 생겨난다.

3.2. 전례 침묵을 위한 동기

“침묵의 성격은 저마다 그 거행에서 이루어지는 순간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앞 장에서 살펴본 내용들에서 일반적인 성격의 동기들을 찾아낼 수 있다. 전례 침묵의 보다 일반적인 동기는 “능동적인 참여를 증진”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신자들이 “거행되는 신비에 보다 친밀하게 참여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덜 능동적으로 여겨지는 조용한 참여는 놀라운 충만함을 기원하도록 이끌 수 있다. 특히, 침묵은 “마음속에 성령의 목소리가 더욱 완전히 들려오게 하고 우리의 개인 기도가 하느님의 말씀과 교회의 공적 목소리에 더욱 밀접하게 결합되기 위하여” 말씀의 경청, 묵상과 기도의 응답을 용이하게 한다.

전례에서의 침묵의 직접적인 목적은 1973년 교황청 경신성의 성찬기도에 관한 회람 “Eucharistiae participationem”에 요약되어 있다. “…거룩한 침묵은 각각 배치되어진 특별한 순간에 부합하게 전례 행위의 부분들에 정해진 때에 지켜지면서, 항상 존중되었고 많은 이에게 요구되었다. 그래서 교우들이 자기 내면을 성찰하고 또는 들은 것을 짧게 묵상하며 혹은 마음속으로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고 기도할 수 있도록 한다.”(18항)

3.3. 전례 침묵의 형태

앞에서 살펴본 예식서들의 언급들을 토대로 전례 묵상을 네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집중의 침묵, 조화의 침묵, 묵상의 침묵, 경배의 침묵.

3.3.1. 집중의 침묵

전례를 거행하기 위한 공동체는 “자신이 하느님 앞에 있음을 깨닫고 간청할 내용을 마음속으로 생각하기 위하여” 모이도록 초대받았다. 이와 유사하게 아동미사지침은 어린이들을 “정신을 집중하여 간단히 묵상하고나 마음속으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기도하도록”(37항) 초대하는 것을 말한다. 전통의 많은 측면들과 연결된 다양한 형태의 이 “recollectio silentiosa 고요한 집중”은 쇄신된 전례에서 이어졌다.

a. 시작예식: 보다 장엄한 형태는 성 금요일 전례 시작에서 주례자의 ‘엎드림’이다. 그러나 이것을 우리는 장례 예식과 공동 참회 거행에서 다른 형태들을 발견한다. 미사의 참회예식을 특별하게 의도한 다양성이다. 그 목적은 고해성사예식서에 나오는 공동참회예식에서 나온다. “강론이 끝나면 양심성찰과 참된 통회를 위하여 넉넉한 침묵의 여유를 준다.”(26항) 곧 양심성찰과 참된 통회가 시작 예식에서의 침묵의 목적이다.

b. 침묵기도: 전례거행 공동체는 주례자의 기도로 끝나는 침묵 기도의 시간에 초대된다. 네 가지가 있다. 첫째로 견진, 허원, 직수여 또는 축복의 예식 전에 참석한 모든 신자들은 침묵 기도를 하도록 권고 받는다. 둘째로 미사의 시작 예식의 마지막인 본기도 전에 주례자는 본기도로 신자들의 침묵기도를 모으는 시간을 잠시 갖는다. 셋째로 미사에서의 보편지향기도에서, 성무일도에서의 청원기도에서 각 지향 사이에 신자들의 응답을 대신할 수 있는 짧은 침묵을 제안했다. 넷째로 ‘장엄기도’에서 공동체 기도는 분절된 양식으로 발전했다: 부제의 지향 알림, 조용한 기도, 주례자의 기도. 이는 존경받을 만한 로마 전통으로 조용한 참여의 의미를 말한다.

3.3.2. 내재화의 침묵

사제와 함께 영적 일치 안에서, 주례사제의 기도를 듣고 내재화하는 침묵이다. 이 거룩한 침묵의 보다 보편적인 예는 성찬 기도 중에 행한다. 주례 사제는 하느님의 목소리로 백성을 향하여 선포하며 백성의 목소리로 하느님에게 영혼들을 올린다. 성찬 기도는 그래서 전례 거행을 위하여 모인 공동체가 거룩한 침묵을 지키는 동안에 다시 울려 퍼진다. 이는 또한 서품식에서 서품기도, 견진 미사에서, 축성생활회의 허원 미사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병자 도유와 서품 예식에서 참석자들의 기도를 동반하는 안수의 조용한 동작이 의미가 있다. 주교와 사제 서품에서 축성의 이 동작은 공동집전 주교와 참석한 사제들에 의해 반복되고 연장된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성령의 내려옴을 위해서다.

3.3.3. 묵상의 침묵

하느님 말씀 선포에 응답하는 침묵이다. 독서와 강론 다음에 하는 침묵은 “들은 것에 대해 잠깐 묵상”이며, “마음속에 성령의 목소리가 더욱 완전히 들려오게 하고 우리의 개인 기도가 하느님의 말씀과 교회의 공적 목소리에 더욱 밀접하게 결합되기 위함”이다.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그 말씀에 동감하도록 한다.” 이 침묵에 대해서는 여러 예식서에서 언급하고 있다: 말씀의 선포 후에, 강론 후에, 시편기도 후에.

부활 성야의 각 독서 후에 조용한 기도로 끝맺는 데 이러한 기도들은 공동체 기도를 요약하고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선포되고 기도된 성경구절들에 현재화된 해설을 준다.

3.3.4. 경배의 침묵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는”(콜로 3,3) 우리 생명을 보다 의식하게 하고 말씀에서 유래한 기도하는 침묵은 성체 신비와의 만남에서 보다 강하게 표현된다. 이 침묵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유익하게 받아 모시도록” 준비시켜주며, 영성체 후에 “마음속으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기도하도록” 하고, 또한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주 그리스도 앞에서 바치는 기도로써 신자들은 영성체 때에 얻은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연장한다.”.

수도 단체의 성체 조배는 “성경독서, 성가, 거룩한 침묵 등으로 실시한다면 그 공동체의 영신 생활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성체성사로 표현되는 일치와 형제애가 그 회원들 사이에 꽃피게 되고 성체께 대한 예배는 더욱 고상하게 이루어진다.”

성체 경배의 이 침묵은 성 금요일 십자가 경배에서도 공통된 형태를 띠고 있다. 십자가는 공동체에 조용하게 등장한다.

전례헌장 30항의 규정을 해석하고 발전시킨 예식서들에 대한 분석은 전례 쇄신이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벙어리 역할과 말씀의 소외를 끝내고 전례 참여의 완전한 형태이며 거행의 순간인 침묵을 다시 피어나게 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전례 침묵에 대해서 엄격한 도식 없이 조절의 폭넓은 적용의 다른 형태들을 생각할 수 있다. 모든 공동체는 주례자와 함께 본연의 신앙과 삶의 표현인 거행에 적합한 리듬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나오는 글

전례헌장에서는 비록 침묵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침묵이 전례의 한부분임은 명확히 하였다. 이러한 바탕을 가지고 전례쇄신을 실행인 예식서들은 침묵에 대한 구체적인 자리들을 마련하였고 다양한 형태로 적용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몇가지 긍정적인 점들이 있다.

첫째는 침묵은 전례의 한 부분이고 절대로 부수적인 부분이 아니라, 전례를 전례답게 하는 기본 요소이다. 그것은 제의실에서부터 침묵을 강조하는 주교예식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전례거행의 준비와 마무리를 침묵으로 한다는 것은 전례 전체에 미치는 침묵의 중요성을 말한다.

둘째는 침묵은 하느님 말씀과 깊이 연결되어 중요성을 지닌다. 복음선포 때에 모든 신자들은 서서 성심껏 정성을 다해 침묵 중에 듣는다. 인간의 상호소통에 있어서 잘 듣기 위한 침묵은 기본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이번 홍보 주일 담화에서도 이 부분을 처음부터 강조했다. “사람들 사이에 진정한 대화와 친교가 이루어지려면 커뮤니케이션의 이 두 요소(침묵과 말)는 균형 속에서 번갈아 이루어지며 서로 보완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과 강론 후에 이루어지는 침묵은 신자 각자가 들은 말씀을 더욱 심화시키고 자기 것으로 삼는 내재화에 필수 요소라 하겠다.

셋째는 침묵은 수동적 태도가 아닌 능동적 참여를 증진시키기 위한 부분이다. 전례헌장 30항은 능동적 참여를 증진시키기 위한 요소로 성가, 행동, 동작, 자세 등을 열거하면서 마지막으로 제때에 지켜진 침묵을 말한다. 그냥 침묵이 아니라 자기의 때에 잘 지켜져야 본연의 의미가 살아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루함을 느끼게 하거나 전체적인 전례의 체계를 망가드릴 수도 있다. 거룩한 침묵은 외적으로는 수동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내적인 능동성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이 된다.

넷째는 그리스도인의 전례거행의 성숙의 표징이 바로 침묵이다. 경신성 장관이었던 마르티모트는전례를 “리듬에 의해, 교차에 의해 이루어졌고 호흡과 같다.”라고 했다. 호흡은 들숨과 날숨의 교차로 행해진다. 전례는 침묵과 말, 동작과 멈춤 등의 교차로 리듬을 형성한다. 교회는 본연의 리듬을 지닌 성숙한 전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러한 침묵의 특성이 잘 나타나기 위해서는 영적 묵상을 지향하는 목적성이 명확해야 하고, 거룩한 침묵을 습득하기 위한 교육과 수련이 필요하다. 전례 주례자이며 연출가인 사제는 침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적절하게 침묵의 순간을 배치해서 전례에서 활동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행 공동체가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무일도 총지침에서 언급했듯이 침묵이 부적절하게 배치되고 시간이 늘어지면 참석자들에게 지루하거나 싫증을 느끼게 하고 전체적인 체계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

거룩한 침묵을 통해 능동적 참여를 준비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잘 준비된 전례를 거행할 때 그리스도의 현존을 더욱 잘 느끼게 하고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인 전례의 본 모습이 드러난다.

거룩한 침묵으로 아들 예수의 생애를 바라보고 뒤따른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모범은 전례에 참여하는 신자들에게 하나의 지름길과 같다. 성모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루카 2,51)하시고 구원의 결정적인 사건인 십자가 희생에 말없이 함께 하셨다(요한 19,26-27). 이제는 그분께서 교회의 어머니로서 “고요히 주님 안에 있어라. 믿고 있어라”(시편 36,7)한 시편의 말씀을 따라 교회공동체가 전례에서 침묵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느님의 말씀에 집중하며 사제가 바치는 감사와 찬미에 내적으로 동의하도록 도와주신다.

《전례 침묵과 관련하여 읽으면 좋을 책》

- 로마노 과르디니 지음, 김영국 옮김, ‘미사, 제대로 드리기’,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3.

윤종식 신부 작성
1995년 서품, 1995년-1997년 불광동본당 보좌, 1998년1월-2008년 6월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전공, 2008년 9월-2010년 8월 화정동본당 공동사목 및 대표주임, 2010년9월-2012년 2월 정발산본당 주임. 2012년 3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현,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전례위원회 위원장.

2 Responses to 전례에서의 침묵- 2012년 홍보주일 심포지움(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주최) 발표문

  1. 침묵… 사실, 제 주 전공이 웬만하면… ‘속엣말 안하기’였는데
    요 며칠… 말이 터져서… 식구들과 친구들을 적절히 할때는… 좋았는데,
    어느 순간… 지나친 말로… 저 자신도 에너지 소모가 너무 많고, 힘이…
    드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많이 먹어도… 살이 쪽쪽 빠지더라고요 … ^^*
    근데, 어느날, 저희 언니가 그러더라고요. ‘대화에서는 듣기가 더 중요한데… !’
    순간… 마음이 뜨끔 하더라고요. 제가… 지나쳤던 모양입니다.

    하느님 말씀… 듣고, 느끼려면… 그분이 애기하시는거… 들을 자세가
    필요하겠단 생각이 이 글을 읽으니… 저절로 드는군요. 오늘 하루종일…
    가족들과 담양 광주호 호수공원을 거닐고, 좀전에… 부처님 오신날이라서
    집 뒷산너머에… 운천사를 다녀왔어요!… 절, 이곳 저곳을 살피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사진과 신위(?)가 모셔져 있더라고요.
    왜… 순수한 사람들은… 자신의 약간의 잘못이나… 실수에도…
    자신을 단죄하는 수위가 높은데… ‘수많은 피를 부르는 결정을 한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경호까지 받으며 살까?’하는 생각…잠시 해보았습니다.

    아마도… 힘으로 연결된 어떠한…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 체계때문이겠지요.
    그래도… 여전히… 좋으신 분들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최선을 다해서… 포용하시면서… 사는것을 보면서, 내 자신이 걸어가야 할
    자리… 살피면서, 중심잡는것이… 꼬옥 필요하겠단 생각해봅니다.

    아울러… 세상에… 쓸데없는 소음… 보태지 않으려면, 저도… 더 절차탁마
    하는 시간 가져야 겠다고, 보탬이 되지 않으면… 더더욱 침묵하면서, 자신을
    다듬어 가는 시간들… 충분히 가져야 되겠단… 생각해봅니다… ^^*

    박지연 로사 2012년 5월 28일 at 5:58 pm 응답
    • Now I’m like, well duh! Truly tahnkful for your help.

      Darrick 2013년 1월 23일 at 1:18 am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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