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8주일 – 욕심과 버림

오늘 복음에서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 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복음서에서 말하고 있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재물이 많거나 혹은 없는 사람만을 일방적으로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회 구조적으로, 혹은 국가와 제도의 몰락으로 어쩔수 없이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했던 사람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유다이즘에서 생각하는 부자 또한 현재의 개념과 달랐습니다. 부(富)는 하느님의 축복으로 생각되었으나, 이 세상에서의 자발적인 가난은 영원한 부를 의미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부자는 재물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는게 큽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지켜야 할 덕목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사회구조적으로 볼 때, 재물이 많은 이들은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통해 된 사람들이 아주 적습니다. 사업을 하다가보면 정직하게 업무 처리를 하게 되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위에서 누군가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을 가만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탕이 많은 곳에는 벌들이 몰려 들게 됩니다. 주위에만 둘러 보더라도… 조금만 사업이 잘 되면 주위에서 국세청에 신고를 해서 세무조사를 받게 하거나, 상대 업자가 방해를 하거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간섭해서, 결국 뜻하지 않게 한순간에 실패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습니다. 한편으로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을 짓밟아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부정과 축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재물이 많으면 또 자꾸 엉뚱한 곳에 관심을 돌립니다. 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런 현상이 아닐까 할 정도로 대부분 재물을 가진 사람들은 흡사하게 변해 갑니다. 참된 인격과 주님만이 내리실 수 있는 기적, 그리고 믿음의 초월성에 대한 관심이 무뎌져서 관심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현세적 즐거움과 쾌락을 더 추구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을 최고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재산이 많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된 사람은 주일미사도 잘 나오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인간의 본능과 시대적 상황을 너무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구원을 위해 과감히 재물을 버릴 것을 촉구합니다. 그 재물이 많은 이에게 있어서 하느님 나라를 위해 가장 걸림돌이 되고 있는 요소를 지적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부자는 울상을 되어 슬퍼하며 주님을 떠나갔습니다. 자신이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던 것을 대충 넘어가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주된 요소는 욕심의 버림입니다. 오늘 복음 이외에도, 길을 떠날 때 지팡이도 돈도 자루도  속옷도 두벌 껴입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과감히 그물을 버리라고 하셨고, 가족도 친지도 버리고, 아버지의 장례까지도 다른이에게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버림은 어떤 것 하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하나라도 관심을 갖는 것은 그에 딸린 것도 관심이 갖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가장 힘들어 하는 버리는 작업에서 시작됩니다.

내 자존심과 안락함을 버릴 수 있을 때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자존심과 안락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의지와 지력, 모든 것을 주님께 봉헌할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 주십니다. 내가 주님께 다가가려고 노력할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내가 주님을 자꾸자꾸 바라보려 할때, 주님께서 나를 그윽히 지켜봐 주십니다. 내가 가진 낙타가 작아질때 주님께서 바늘귀를 크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말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란 말처럼,  하느님 나라의 가능성을 위해 오늘도 우리는 내 중심의 사고를 모두 버리고 주님께  온전히 맡겨드려야 할 것입니다. 내가 하나를 주님께 잘 봉헌할 수 있다면 나머지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한분도 신부 작성
사랑은 주와 우리 결합시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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