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전례 이야기 ‘전례 짬짜’ (39) 성호(聖號·signum crucis)와 성호경(聖號經)

(가톨릭 전례학회-가톨릭신문 공동기획)

많은 신자들과 개신교 신자들은 천주교 신자의 가장 큰 표식으로 성호경과 묵주를 말한다.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천주교 신자를 나타내는 방법으로 성호를 긋는 모습이나 묵주를 소지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표지는 올림픽 영웅인 배드민턴의 방수현 선수나 피겨의 김연아 선수가 경기 전·후에 성호를 긋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모르게 미소와 함께 강한 동료의식이 생기는 것을 통해 그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성호’는 말뜻으로만 보면, ‘거룩한 표지’이지만 이 용어는 ‘십자성호’(十字聖號)의 줄임말이다. 그리고 성호경은 이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하는 가장 짧으면서도 중요한 삼위일체 신앙고백기도문이다. 모든 전례뿐 아니라 교우들의 일상생활의 시작과 마침을 이 성호경을 바치면서 모든 일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행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톨릭 교리서에서는 이렇게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하면서 긋는 십자성호로써 자신의 하루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바치며, 자신이 아버지의 자녀로서 성령 안에서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구세주의 은총을 청한다. 십자성호는 유혹과 어려움 가운데서 우리를 굳세게 해준다.’ 십자성호를 그으며 하는 성호경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로서 천주교의 사대교리 중 삼위일체의 교리를 나타낸다.

그래서 ‘성호’는 한국천주교회의 박해시대 때 교우들이 신자임을 드러내는 표지로 사용했다.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에서 보면 순교자들인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와 강완숙 골롬바는 형장에서도 당당하게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는 십자성호를 크게 긋고 망나니의 칼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렇듯 성호는 유혹과 어려움 가운데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표지로 사용했다. 그래서 성호는 교우들끼리 서로를 알아보는 표지로도 사용됐다. 달레는 위의 책에서 박해로 인해 쫓겨나서 두세 집에 모여 살면서 다른 교우들과 연락을 할 수 없었던 교우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아주 열악한 상황에 놓였으며 다른 교우들을 찾기 위해서 행상이나 거지로 변장하고 많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거나 동냥을 했다고 한다. 교우들을 찾고 알아보는 방법으로 성호를 긋는 것으로 했다고 한다.

“그 사람은 동냥을 받으면서 성호를 긋곤 했습니다. 천주께서는 그의 노력을 축복하시어, 한 번은 그가 신자를 만나게 됐습니다. 이 신자는 그가 성호 긋는 것을 알아보고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신자인 것을 알게 되고, 그때부터 죽 연락을 취할 수가 있었습니다.”

 

성호는 가톨릭만 아니라 동방정교회나 그 밖의 다른 그리스도교에서도 한다. 즉 동방정교회와 분열되기 전부터 성호는 교회에 존재했고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십자성호는 2세기경에 시작된 개인 신심으로, 초대교회 문헌들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간단한 십자성호를 긋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160년경 카르타고에서 태어난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여행하거나 어디를 갈 때, 집 안에 들어오거나 밖으로 나갈 때, 신을 신을 때, 목욕을 할 때, 음식을 먹을 때, 촛불을 켤 때, 잠들 때, 앉아 있을 때, 무슨 일을 할 때, 그때그때 이마에 십자성호를 그었다.’ 또한 초대교회의 일화 중에서 구마(驅魔·exorcismus) 용도로 사용한 경우도 있는데, 이집트의 성 안토니오에 관한 일화를 보면 그를 찾아 온 손님들이 악마들의 소란으로 무서워 떨고 있을 때 “여러분 어서 십자성호를 그으십시오. 악마들이 여러분에게 올 경우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몸과 거처하는 집에다 십자성호를 긋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라고 권고했다.

초대교회부터의 이러한 관습은 성경에서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음이지만 구원받는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능력입니다”(1코린 1,18)와 “내게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말고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나는 세상에 대해 죽었고 세상도 나에 대해 죽었습니다”(갈라 6,14)라고 하신 말씀을 생활에서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생활습관이 4세기경에는 전례로 들어와서 사제가 사람이나 사물(빵과 잔 등)에 십자를 그어 축복하는 관습으로 발전했는데, 이때부터 이마뿐 아니라 가슴에도 작은 십자 표시를 했다. 현재와 같이 이마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두 어깨를 연결해 크게 십자가를 긋는 것은 5세기경부터 개인적으로 실천됐다. 6세기경, 동방에서는 단성론(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오직 하나의 성, 즉 인성이 된 신성(神性)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이단설)과 논쟁을 하면서 두 개(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미) 혹은 세 개(삼위일체 또는 예수-그리스도-구세주의 세 명칭을 의미)의 손가락을 모아서 십자표를 하는 신심이 도입됐다. 12세기경부터는 오늘날 복음 전에 하는 것처럼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작은 십자가를 그리는 형식이 전례에 도입됐다.

한편 5세기경부터 시작된 큰 십자성호는 동방정교회에서 하는 머리, 가슴, 오른쪽 어깨 그리고 왼쪽 어깨 순으로 그었다. 13세기의 인노첸시오 3세(+1216)도 그렇게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서방교회에서는 시간이 흐르면서 세 손가락을 모아서 하던 것은 손가락을 모두 모아서 하는 방식으로, 오른쪽 어깨가 먼저가 아니라 왼쪽 어깨를 먼저 찍는 방식으로 변화됐다.

우리는 성 아우구스티노가 강론을 통해서 가르쳤던 십자성호에 대한 내용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십사성호로써 주님의 몸이 거룩해지고, 세례수가 축성되며 사제들과 다른 직무자들이 서품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행하는 이것을 통해서 모든 것은 거룩하게 됩니다.”

성호를 그으면서 성호경을 하면 우리는 거룩하게 된다. 삼위일체의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을 하면서 세례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준다. 여기에 성수를 더하면 거룩한 전례를 행하기 위한 기본적인 준비를 한 것이다. 그러나 성호와 성호경을 통해서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 받았음을 기억하며 자신이 거룩하게 됐음을 생각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나 성의 없이 행한다면 거룩함의 정도는 떨어진다. 올바른 십자성호를 긋도록 노력해야 한다. 천천히, 크게, 이마에서 가슴으로, 이 어깨에서 저 어깨로. 이렇게 하다보면 온몸이 십자가의 표시와 하나가 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윤종식·허윤석 신부(가톨릭 전례학회)
 
 
 
전례학회 웹사이트 운영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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