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일 – 봉헌

오늘 복음에서는 헌금함에 돈을 넣는 부자들과 가난한 과부 한사람이 등장합니다. 누군가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두 인물이 성당에 도착해서 한 기도를 우의적으로 써놓은 글이 있었습니다.

 

부자가 먼저 성당에 도착해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후에 과부는 조용히 와서 성당의 귀퉁이에 앉았습니다. 먼저 부자가 가슴을 치며 큰 소리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는 하찮은 놈입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기도 소리가 아주 우렁차게 큰 소리로 울려 퍼졌습니다. 한쪽에서 조용히 과부가 기도했습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앞에서 저는 죄인이며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듣고 있던 부자가 과부쪽을 돌아보며 불쾌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허… 저 여자가 … 제가 감히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네…”

 

예수님께서는 헌금함 맞은 쪽에 앉아서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습니다. 제자들도 함께 보고 있었습니다. 부자와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면서 제자들에게 참된 봉헌의 자세가 무엇인가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 자세는 돈의 액수가 아니라 정성과 마음임을 말해주셨습니다. 다들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봉헌이란 영어의 단어, sacrifice는 희생이란 뜻도 가직고 있습니다. 희생이란 자신이 손해를 보고, 자신이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다른 이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내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서도 하느님께 봉헌하게 되는 제물은 죽은 제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산 제물을 바치도록 합니다. 성경뿐 아니라 옛 이야기들을 보더라도 처녀를 산 채로 바치는 풍습이 많이 있었는데, 이것은 바로 제물 그 자체가 아니라 제물을 바치는 사람들의 자세를 더 강조하는 것입니다.

구약을 보면 하느님은 살아있는 양이나 염소를 태워서 피어 오르는 그 연기를 좋아하신다고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살아있는 것을 죽여서 태워 나는 냄새를 좋아 하셨을 리 없습니다. 그것도 유목민에게 있어서 맏이로 난 가장 흠없는 수컷을 죽여야 한다는 것을 볼 때,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이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산 것을 죽이고, 죽인 것을 태워서 연기 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자기의 아들 이사악을 죽이려고 한 것을 좋아했던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내어 놓을 수 있는 가장 큰 희생을 어여삐 보시는 것입니다.

 

봉헌에 있어서 바로 정성과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사람이라면 다들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 우리에게 있어서 그것을 실천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특별히 이기주의적인 사회 분위기와 물질만능의 현실에서 돈과 물질에 대해서 아주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열심한 신자들이라 할지라도 새 영세자가 교무금이나 봉헌금을 어느정도 내야 하는지 물으면 “너무 많이 내지 말라”는 말이 많습니다. 봉헌과 희생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기 보다는 봉헌금, 희사금액 그 자체에 대해서 더 말합니다.

 

봉헌은 하느님께 드리는 선물이자 마음입니다. 바로 주님께 주시는 은혜와 은총에 보답하는 것입니다. 도둑 심보처럼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은 수천만원 수억원어치 이상 되는데.. 난 내 주머니에 있는 돈 얼마를 봉헌하는 것은 야비하고 부끄러운 일일뿐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무례입니다.

 

우리는 더욱더 마음을 주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그 증거가 바로 내가 얼마나 손해보고 얼마나 불편한지를 보면 됩니다. 내가 혹시 지금 참 바쁘고,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가 주님께 많은 것을 봉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담아 주님께 봉헌합시다. 과부가 드리는 그 작은 렙톤 두닢이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한분도 신부 작성
사랑은 주와 우리 결합시키리....

One Response to 연중 제32주일 – 봉헌

  1. 봉헌이란 희생이란 뜻을 가지고 여기가 잠시 공사중 이었나봐요…
    마음으로 전하는 기쁨이 참 선물로 와 다았네요…

    뽀로로 2014년 4월 18일 at 10:05 pm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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