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와 시간 (전례력)

시간은 우주 만물의 변화에 대한 경험을 말하는 데에 사용하는 약속 단위입니다. 흔히 시간은 흘러 세상이 변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시간이 흘러서 변화하는 것이라기보다 변화하는 것을 일컬어 시간이라고 합니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는 시기를 봄이라고 부릅니다.

날, 주간, 달, 해와 같은 시간의 요소들을 질서 있게 정리하고 배치해 놓은 체계가 달력이라고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달력은 기원전 11.000년경 달을 관찰하여 독수리 뼈에다 눈금으로 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달력은 시간을 재고, 시간에 리듬을 줍니다. 달리 말하면 시간에 들어 있는 리듬을 표시하고 삶을 위하여 적절하게 배치합니다. 이제 달력은 우리의 삶을 지켜보고 지켜줍니다. 약속이나 다른 무엇을 기억하고 챙기기 위하여 여러 방식으로 표시하고 기록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모습입니다. 달력 덕분에 우리는 시간 안에 활동, 사건, 기억, 계획과 기대를 담아 놓을 수 있게 됩니다. 날들은 더 이상 항상 똑같은 날이 아닙니다. 삶의 틀이 만들어지고 축제가 생기며, 일하는 날과 쉬는 날을 구분할 있습니다. 달력 덕분에 공동체 구성원들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달력은 그 공동체의 모습과 색깔을 드러낸다고 하겠습니다. 실제 문화마다 고유하고 독특한 달력을 만들어 사용합니다. 이슬람, 유다, 마야, 미얀마 달력 같은 것들입니다.

달력은 관찰에서 나왔습니다. 우주와 자연에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되풀이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특히 해와 달의 주기가 중요합니다. 성경도 이 두 주기를 달력의 기초로 인준합니다 (창세 1, 14-16). 모든 달력의 중심 단위는 날, 달, 해입니다. 날, 곧 하루는 지구의 자전 주기이고, 한 달은 달의 공전 주기이며, 한 해는 지구의 공전 주기입니다. 하루의 시작은 달력에 따라 다릅니다. 고대 이집트와 인도에서는 통이 틀 무렵으로, 유다인, 이슬람교도, 중국인들은 해질 무렵으로 보았습니다. 로마인들은 자정을 하루의 시작으로 보았는데 오늘날 이 관습이 세계적인 표준이 되었습니다. 한 해의 시작도 지역이나 문화에 따라 다릅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보통 봄에 시작합니다. 가톨릭 전례력에서는 대림 첫 주일입니다 (11월 마지막 주일).

한편, 주간은 자연의 규칙과 관계없이 생겨났습니다. 되풀이되는 사회 경제 활동 (예, 시장 서는 날) 또는 종교 축제일을 기준으로 정해졌습니다. 세계가 모두 쓰고 있는 한 주간 7일 주기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생겨났습니다. 히브리인들이 이를 받아들여 안식일을 기초로 삶에 적용하였습니다. 이어서 소아시아, 그리스, 알렉산드리아, 로마로 퍼져나갔고, 그리스에서는 주간의 날들에는 해와 달 외에 다섯 혹성들의 이름을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 붙였습니다. 바빌론 점성학에서 신성으로 공경하던 별들의 이름이었습니다. 4세기에 콘스탄티노 대제는 주간 7일 주기를 공식적으로 도입하였습니다. 그것은 이교 세계와 그리스도교 세계의 타협안처럼 보입니다. 곧, 주님의 날을 지내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대에 맞추어 히브리 전통을 따라 7일 주기를 택하였고, 날들에게는 이교의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공식 이름 곁에 자기들이 고유하게 지은 이름을 붙였습니다. 특히 토요일과 일요일에 그렇게 하였습니다 (일요일=주님의 날/주일, 월요일=제2일 …. 금요일=제6일, 토요일=안식일). 그러나 이 이름들은 지금까지도 거의 교회 안에서만 사용합니다.

그리스도교 달력은 히브리-바빌론 태음력과 이집트-로마의 태양력을 조화시킨 것입니다. 해마다 지내는 부활(파스카) 축제와 여기에 딸린 모든 축제일들은 히브리인들의 태음-태양력을 따릅니다. 다른 고정 축일들은 로마 태양력을 기초로 계산된 것입니다. 로마 태양력은 기원전 46년경 율리우스 황제가 개정한 것이었습니다 (율리우스력). 햇수를 처음에는 “로마 건국 기원”부터 계산했지만 수도승 디오니시오의 주장을 받아들여 532년부터 “주님의 [탄생] 해”부터 (라틴말 Anno Domini = A.D. = 주님의 해. 우리말로 “기원 후” 또는 “서력기원/서기”로 씁니다) 계산하였습니다. 로마의 이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승리를 뜻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율리우스 달력의 한 해 길이는 실제 지구의 공전 주기와 해마다 11분 14초 차이가 있었으며, 이 차이를 128년 동안 합하면 하루가 됩니다. 그래서 16세기에는 실제 춘분 날짜는 계산된 것보다 열흘이 빠르게 되었습니다. 니체아 공의회가 결정한 대로 부활절 계산을 위한 춘분날을 3월 21일에 맞추기 위하여 그레고리오 13세 교황은 달력 개정을 하였습니다 (그레고리우스력). 그래서 1582년에는 10월 4일 목요일 (성 프란치스코 축일) 다음에 10월 15일 금요일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윤년에 예외를 도입하여 차이를 메꾸었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구원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구원 역사는 자연 주기보다 앞서지만, 자연이 제안한 시간 단위에 경축의 날을 맞춥니다. 전례의 달력에서 기본이 되는 요소는 “날”로서 “전례일”이라 부릅니다. 전례일은 세상의 날처럼 로마 관습에 따라 자정에서부터 자정까지이지만 히브리 전통을 따라 주일 (또는 중요한 축일)에는 토요일 (또는 축일 전날) 저녁부터 시작하기도 합니다. 전례일에는 여러 종류의 축제일도 있고 축제가 없는 평일도 있습니다. 그리고 큰 축제일 앞에 오는 날 저녁을 가리키는 “전야”는 보통 축제를 준비하는 성격이 있습니다. 한편, 부활(파스카)과 성탄 대축일은 팔일 동안 축제로 지내는데 (팔일축제) 교회의 묵상과 기쁨을 연장하는 뜻이 있습니다. 전례일과 “세속일” 차이는 교회가 시간의 흐름을 성화하기 위하여 행하는 전례 행위들로 드러납니다. 이 행위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성찬례 거행과 교회의 공식 기도인 시간전례, 곧 성무일도 거행입니다. 시간전례는 정해진 시간에 바치고 미사는 신자들에게 편리한 시간에 거행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 문헌인 “디다케”는 그리스도인들은 아침, 정오, 저녁에 주님의 기도를 바칠 것을 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들에 바치는 삼종기도도 강생과 구원의 신비를 기억합니다.

세상에 오시어 수난하시고 부활하신 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사람의 분리가 없어지고 영원이 시간 안에 드러났습니다. 파스카(부활) 성야에 초 준비 예식에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며 주님께서 시간의 주인이심을 선포하고 고백합니다. “주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시작이며 마침이시고, 알파이며 오메가이시고, 시간도 시대도 주님의 것이오니 영광과 권능이 영원토록 주님께 있나이다. 아멘.”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시간은 거룩합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깨닫고 그렇게 살기 위하여, 신학 표현으로는 “모든 시간을 성화하기 위하여” 일상 시간과는 다른 시간, 축제의 시간, 전례의 시간이 있습니다. 이 시간은 영원하신 주님께서 시간 안으로 들어오신 강생의 시간이고, 주님께서 시간을 영원으로 축성하신 부활의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영원의 시간이면서 언제나 지금이고 오늘입니다. 주님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히브 13, 8)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전례에서 시간의 틈은 사라지고 오직 현재만이 있게 됩니다. 미사에서 복음을 선포할 때 언제나 “그때에”라는 말을 덧붙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신자들은 이 세상 시간과는 다른 시간으로 들어가, 지금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전례 시간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체험하는 시간, 곧 변화의 경험을 경축하는 시간입니다. 공자님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참된 “아침”이며 거룩한 시간인 전례에 참여하여 시간의 실체를 경험하면 삶이 무엇인지 올바르게 드러난다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하루를 맺는 끝기도 마지막에 “전능하신 하느님,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하고 강복을 청합니다.

 

 

 

심규재 신부 작성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교황청립 전례학 연구소(로마 성 안셀모 대학)박사학위, 수도자 신학원(서울)전례학 교수 역임,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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