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송2-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미사통상문에는 성탄 감사송이 세 가지가 실려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미사통상문에는 성탄 감사송이 세 가지가 실려 있습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이 세 감사송의 내용을 수시로 묵상하면서 우리 인간 사이에 탄생하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당신의 외아드님을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신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고 큰가를 생각해 보자고 초대합니다. 아울러 당신의 외아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보내주신 하느님과 당신 자신을 우리 구원의 제물로 내놓으신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도 우리가 가깝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오히려 외롭고 불우한 형제자매들에게 어떠한 형태로건 우리 자신을 선물할 수 있는 성탄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성탄 감사송1에서는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는 빛으로 오시는 그리스도가 강조되고 계십니다. 우리 눈으로 뵐 수 없었던 하느님을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을 통하여 또 그분의 성장과 생활을 통하여 아주 구체적으로 알아 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성사이시며 계시이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나중에 당신 자신에 대하여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습니다.”(요한 14,6)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을 확실하게 뵙고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탄 감사송 2는 강생의 신비로 새로워진 우주 질서를 찬미합니다. 사람으로 탄생하신 말씀이신 예수님은 볼 수 없던 하느님을 볼 수 있게 하시고, 시작도 끝도 없으신 영원하신 분을 우리처럼 시간 안에 생일을 갖게 하시고, 죄로 타락한 인간과 다른 피조물들을 새롭게 회복하시고, 특히 버림 받았던 인류를 당신의 수난과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통하여 하늘나라로 불러주십니다.

 성탄 감사송 3은 말씀의 강생으로 이루어지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친교를 찬미하며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통하여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 사람과 하나가 되셨고 따라서 죄스럽고 비천한 인간이 하느님처럼 되었습니다. 정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이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이 되시어 인간의 나약함에까지 동참하실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즉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 때문입니다. 영원히 살아계시는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죽어야 할 인간에게 죽지 않는 생명의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에덴동산에서부터 하느님께 거역하고 주님으로부터 도망치기를 반복해 왔지만 하느님은 우리를 죄와 죽음의 구렁텅이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늘 자비로운 마음으로 우리를 도와주시며, 특히 하느님을 그리워하고 목말라하는 사람은 다 당신께로 인도해 주시고 만나게 해 주십니다.

 이 세 감사송을 통하여 특별히 주목해야 하는 대목은 강생적입니다. 즉 하느님께서 강생하신 것처럼 우리도 매사에 있어서 강생적으로 생각하고 강생적으로 행동하고 강생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강생하시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모든 특전을 포기하시고 성모님의 태중에 잉태하셔야 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누추한 외양간에서 탄생하셔야 했고 전 생애를 통하여 인간의 모든 체험을 우리와 똑같이 하셔야 했습니다. 우리가 강생적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포기와 가난을 사랑하고 겸손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 중에 성탄시기에 모든 성당에 꾸며지는 외양간과 구유 그리고 그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님을 꼽지 않을 수 없지요. 이번 성탄에는 구유 앞에서 성탄 감사송을 때때로 묵상해 보시라고 권장하고 싶습니다. 묵상을 하면 할수록 더 깊은 깨달음과 아울러 더 큰 마음의 행복과 평화와 기쁨도 선물 받으실 겁니다. 곁들여서 성탄시기의 매일 복음을 관상하신다면 그 효과는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감사송1] 글 바로가기:  http://liturgia.kr/?p=12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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