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와 음악

많은 종교와 문화에서 예쁜 꽃, 좋은 향, 맑은 차, 아름다운 소리는 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사실 이런 것들은 누구나 좋아합니다. 곁에 있으면 마음에 기쁨이 스며들고 평화로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참되고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신에게 봉헌하는 것은 또한 자기 영혼에게 돌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힌두교도들은 신전에 들어 갈 때 문에서 종을 울려 신을 기쁘게 합니다. 좋은 파동이, 곧 시원적 음악이 영혼의 깊은 곳에 닿아 기쁨과 평화를 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음악은 물리적 진동으로 이루어지는데, 인간은 이 진동과 한 몸이 되어 신비스럽게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을 넘어섭니다.

사람은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와 만날 때, 곧 신과 만날 때 예술을 이용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예술들과 마찬가지로 음악의 기원과 역사는 종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반대로 종교의 기원과 역사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네주신 주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을 노래로 찬양합니다. “나는 주님께 노래하리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 교회는 해마다 전례주년의 정점인 파스카 성야 예식에서 탈출 이야기를 들으며 이 노래를 되풀이 하여 부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되고 완전한 파스카를 예식으로 거행하시며 사도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유대교 회당의 예배 관습에 따라, 시편, 찬미가, 환호, 영송과 같은 노래를 부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을 기렸습니다.

전례에서 노래를 부르는 까닭은, 또는 전례가 음악으로 이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실제적 이유가 있습니다. 넓은 곳에서 선포하는 말씀이 잘 들리려면 보통 말하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큰 소리로 외치면 소리가 찌그려져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목소리로 노래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영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노래는 평소의 감정을 넘어서는 높이 들려진 마음 상태를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사람이 신비를 체험할 때 보통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음악으로 또는 음악과 결합하여 그 체험의 표현은 더욱 큰 힘과 효과를 냅니다. 내용과 그 표현 방식에 똑같은 가치를 주는 셈입니다. 사람이 엎드리거나 무릎을 꿇는 동작으로 더욱 진실한 기도를 하고 기도에 도움을 받는 것과 비슷합니다.
또한 아우구스티노 성인 말씀대로 “노래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영혼의 기쁨을 느끼게 되고, 그 영혼에서 자연스럽게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믿음으로 자신을 주님께 바치는 사람도 영혼의 행복을 노래로 표현합니다. 음악은 “영혼이 자기 상태를 드러내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노래하게 됩니다. 평범한 문자로 기록된 이야기가 노래를 통하여 특별한 것으로 변합니다. 전례에서 하는 노래는 또 다른 “성령의 사건”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전례의 기도와 예식들이 노래로 이루어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정성껏 노래 부르는 사람은 두 배로 기도한다.”는 옛 전례 격언도 같은 사실을 말합니다. 실제로 고대 교회에서는, 동방 교회에서는 지금도 그렇지만, 전례 거행은 거의 노래로 이루어졌습니다. 거룩한 본문을 노래와 낭송 사이 중간 형태로 전달하는 서창법(칸틸라치오네)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중세 이후 서방 교회의 많은 미사들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노래가 제 자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2002년에 나온 새 “로마 미사경본”에서는 교회의 풍요로운 노래 전통을 복구하는 뜻으로 악보를 많이 넣었습니다.

전례 음악은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과 기도가 들어 있는 것으로서 교회가 전례 안에서 사용하도록 허용한 음악입니다. 교회 가르침을 보면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전례에서 사용하려면 무엇보다 신학적으로 올바르고 영적으로 뛰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보통 노랫말을 성경이나 전례문에서 가져옵니다. 이에 덧붙여 전례 시기와 예식에 맞아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예술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누구나 부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술적으로 뛰어나고 표현 방식도 매우 경건한 음악이라도 전례에서 회중이 사용할 수 없으면 좋은 전례 음악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레고리오 노래를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왔습니다. 그리고 고전 다성 음악도 (특히 팔레스트리나) 위에서 말한 기준에 합당한 것으로 봅니다. 현대 노래들도 위 기준에 맞추어 널리 받아들입니다.

한편, 악기와 관련하여 교회는 고정된 규범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바쳐야 한다는 기준에 따라 전례 거행에서는 가장 훌륭한 악기인 인간의 목소리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전통도 있고, 다른 편에서는 인간의 목소리만으로 하느님을 찬양하기에는 부족하고, 다른 피조물도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악기를 사용하는 전통도 있습니다. 보통 동방 교회에서는 전례에서 악기를 사용하지 않으나 서방 교회에서는 언제나 악기를 사용했습니다. 그 가운데 파이프 오르간을 중요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마음을 하느님께 들어 올리는데 도움을 주는 다른 악기들도 금하지 않습니다.

음악은 다른 예술처럼, 그리고 다른 피조물의 아름다움처럼 하느님께 이끄는 길입니다. 영원히 머물기 위한 거처가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 문헌들은 “음악은 전례 거행에서 봉사 직무를 수행한다”고 말합니다. 곧, 음악은 전례의 “겸손한 시녀”, “고귀한 여종”, “거룩한 전례의 집사”입니다. 전례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빌려 사람을 거룩하게 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데 이바지합니다. 밀가루로 된 세상의 빵을 빌려 천상의 빵으로 변형시키는 것에 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봉사에 충실할 때 음악은 순수하고 고귀한 자신의 예술 가치를 더욱 뚜렷이 드러냅니다.

노래는 기도이기도 하고 기도를 잘 하도록 이끌어줍니다. 그러므로 노래를 고르고 부를 때 기도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성가대이든 선창이든 회중이든 기도는 하지 않고 노래는 잘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노래는 공동체의 일치를 표현한다는 사실도 깨닫는 것도 중요합니다.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 함께 모일 때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룹니다. “마음의 일치는 목소리의 일치로 더욱 깊이 이루어집니다.” 나아가 음악은 전례 거행에 아름다움이라는 옷을 입혀줍니다. 아름다움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아름다우신 주님”의 얼굴로서 영원한 세계에 대한 기억이며 예식을 살아있게 하는 힘입니다.

그러므로 노래가 기도에 도움이 안 되고 공동체 일체에 이바지 하지 못하고 전례에 아름다움의 옷을 입히는데 방해가 된다면 없는 것이 낫습니다. 모든 성가를 성가대나 독창자만 하고 회중은 입을 닫고 있다면 일치를 표현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노래를 회중 전체가 불러야 한다는 생각도 맞지 않습니다. 덧붙여 전례 거행에서 침묵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도 생각할 일입니다. 침묵은 음악의 출발선이자 목적지이라고 할 수 있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노래를 잘 하지 못한 사람이나 노래를 전혀 못하는 사람도 들음으로써 전례 음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사람은 하늘, 땅, 바다와 관련을 맺고 살아간다. 바다에서는 물고기들은 침묵하고, 땅에서는 짐승들이 울부짖으며, 하늘에서는 새들이 노래하며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베네딕토 교황님은 이에 덧붙여 전례 음악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풀이했습니다. “사람은 바다의 깊이, 땅의 무게, 하늘의 높이를 다 가지고 있으며 침묵, 울부짖음, 노래 모두 할 줄 압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높은 하늘의 노래, 깊은 바다의 침묵을 잊어버리고 울부짖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참된 전례는 바다, 땅, 하늘 전체를 사람에게 되돌려 줍니다. 전례는 침묵을 가르쳐 바다의 깊이를 깨우치게 하고, 노래를 가르쳐 하늘을 날게 합니다. 전례에서 우리는 천사들과 (성가대와 선창이 나타냄) 함께 노래하고, 참된 기다림 속에서 침묵하며 삶의 깊이를 느낍니다. 이렇게 전례는 땅을, 우리의 영혼과 삶을 치유합니다.“

 

 

 

심규재 신부 작성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교황청립 전례학 연구소(로마 성 안셀모 대학)박사학위, 수도자 신학원(서울)전례학 교수 역임,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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