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사람 요셉

3월은 성 요셉 성월이고 19일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

교회가 예수님과 성모님이 아닌 한 개인을 기념하기 위하여 성월을 제정한 것은 요셉 성인의 경우가 유일합니다.

요셉 성인은 그만큼 인생살이의 모범이 되시는 분이며, 현대생활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에게 안온한 포구를 가리켜주는 등대 같은 분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요셉 성인에 대하여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문헌상으로도 요셉 성인이 기록된 것은 마태오 복음 1, 2장에서 성모님의 잉태 이야기와 12살까지 유년시절의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그럼에도 요셉 성인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성인의 삶을 통하여 가장 바람직하고 행복한 인생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오 복음서 저자는 요셉 성인을 “의로운 사람”(마태 1,19)이라고 합니다. 국어사전에서 의로움이라 ‘떳떳하고 올바른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성서적인 의미로는 더 깊고 아주 구체적인 뜻을 담고 있습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의로움은 무엇보다도 모든 일에 있어서 하느님께 완전히 열려있음을 말합니다. 요셉 성인의 경우, 자신의 약혼녀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극도로 번민하고 있을 때, 그 일이 하느님(성령)의 일이라는 천사의 통보를 받고서는 그의 지시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리고는 아무런 원망이나 불평도 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그 아내와 그 아기를 보호하고 양육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마태 13,55)라고 했던 일에서 보더라도 요셉 성인은 예수님을 친아들로 삼아 충실히 기르셨습니다.

하느님께 완전히 열려있다는 것은 모든 일에 있어서 하느님의 뜻을 자신의 뜻보다 우선시 한다는 것입니다.
요셉 성인은 임신한 마리아를 자기 아내로 맞아들였고, 천사가 일러준 대로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지었습니다. 이집트로 피난을 갈 때에도, 다시 돌아올 때에도 천사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피난에서 돌아와 나자렛에 정착하기까지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요셉 성인에게 당신의 외아드님과 성모님을 안전하게 보살피는 일을 맡기셨고, 성인은 모든 정성을 다하여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교회는 성무일도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는 주님께서 당신 집의 가장으로 세우신 충직하고 지혜로운 종이로다.”(성 요셉 대 축일, 제1저녁기도 성모의 노래 후렴)

우리 시대에도 의롭다는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의로움으로 다른 이들을 처단하거나 두려움에로 몰고 가기도 합니다. 요셉의 의로움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자기의 약혼녀가 홀몸이 아님을 알게 된 요셉은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마태 1,19)을 하였습니다. 요셉 성인은 자신의 올바름을 드러내려고 마리아에게 수치를 입힌다거나 돌에 맞아죽게끔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참된 의로움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약혼 중에 있던 요셉이 체험한 배신감과 당혹스러움은 마리아에게 해를 끼칠 수 있었고, 온 동네를 소란하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에게 요셉은 세상에서 다시 찾아볼 수 없는, 가장 멋지고 훌륭한 배우자였습니다.
성모님께서 만삭의 몸으로 나자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여행할 때, 외양간에서 해산을 할 때, 국경을 넘어 피난을 다닐 때, 열두 살 박이 예수님을 잃고 헤매었을 때, 그 곁에는 항상 요셉 성인이 있었고 성모님과 함께 어려움과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이 성장하여 공생활을 시작하시게 되었을 때, 요셉 성인은 조용히 인생의 무대에서 사라집니다. 성인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려진 바는 전혀 없습니다. 자신을 소리 없이 감추신 성인의 모습은 온화하고 겸손함의 모범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전통으로 요셉 성인을 부를 때 대(大) 성 요셉이라고 불러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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