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 때 잊지 마세요!

는 모든 신자에게 의무로 부과되기 때문에 언제나 부담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법적으로 적어도 일년에 한 번은 반드시 고해성사를 보도록
독려하는 것은 고해성사를 통하여 받는 하느님의 은혜(축복)가 우리 인생을 한없이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 준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잘 준비하여 고해성사를 보는 사람은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진정한 자유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고해성사를 잘 준비하기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질문을 할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고해성사를 보러 갈 때 꼭 명심할 몇 가지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제가 “꼭”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이 몇 가지는 것이 듣고 보면 너무나 당연한 교리 상식인데 고해성사 때 보면 전혀 당연하지가 않다는 사실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죄를 고백할 때는 ‘나의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말하거나 내가 죄를 범하게 된 경과를 장황하게 보고하는 것은 고백이 아닙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성을 냈습니다.”하고 고백할 것을 “글세, 그 사람이 나를 못 살게 구니까 내가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화를 냈습니다.” 할 때 나는 내 잘못보다는 그 사람의 잘못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지요.

고백한다는 것은 내가 진심으로 ‘내 탓이요 내 탓이요’ 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할 때만 그 잘못에 대한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습니까?


다음으로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받기 위하여
꼭 필요한 것 중의 하나는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뉘우치는 것입니다.

성서에서 우리는 아무리 큰 죄를 범하였어도 뉘우치는 사람이 용서와 축복을 받은 사례를 부지기수로 찾을 수 있습니다. 또 자기의 죄를 부정하거나 죄스런 삶에 대한 회심이 없는 사람들이 징벌을 당하는 사례도 수 없이 찾을 수 있습니다.


루카 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는 그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사례라 하겠습니다. 상속 받은 재산을 탕진하고 방탕한 생활로 인생을 망친 아들이 뉘우치고 돌아왔을 때 그를 맞이한 자비로운 아버지의 모습에서,
내 잘못을 뉘우칠 때 나를 받아 주실 하느님의 모습을 뵐 수 있습니다.
그 아버지는 그 아들의 과거를 문제 삼지 않고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쁘게 맞아주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고해 때 우리가 명심해야 할 또 하나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 탕자는 자기의 비참한 처지에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버지에게 돌아갈 것을 결심하고 즉각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아버지에게 돌아왔을 때 자기 아버지에게 “이제는 아들이라고 부르지도 말고 일꾼 중의 하나로 받아들여 주십시오.” 하고 자기를 낮추며 청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는 절대로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도 고해성사를 통하여 주님의 사랑과 축복을 되받으려면, 같은 죄를 다시 범하지 않겠다는 것과 죄의 기회와 환경을 피하겠다는 다짐을(적어도 고백을 하는 그 때에는) 굳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준비를 갖추기 위하여 매일 열린 마음으로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는 기도 생활 습관화되어야 하고, 적어도 하루 일과를 양심성찰로 마감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양심성찰
을 통하여 하루 종일 하느님께서 내 일상에 어떻게 함께 하여 주셨는지, 또 내 일과 중에 얼마나 자주 주님의 현존을 의식하고 주님을 그리워했었는지 살펴봄으로써, 내 삶의 보람찬 면과 부족함 또는 죄스러움을 분명하게 구별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혜로운 도우심과 나의 아낌없는 노력이 합쳐져 아름다운 열매가 풍성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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