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결심에 대하여

사순절이 올 때마다 우리는 많은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영웅적인 결심을 하지요. 많은 경우에 이 결심이 너무 커서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를 가까스로 지탱하고 좌절하기 일쑤입니다. 다른 한편 결심의 유형을 살펴보면 주로 금욕적인 것이거나 고행적인 것이 대부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담배를 끊는다든가 하루에 십자가의 길을 두 번씩 하겠다고 다짐하는 것 등입니다.
물론 이러한 결심은 다 훌륭한 것이고, 특히 끝까지 잘 실천한다면 공로도 크고 느끼는 성취감도 대단할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큰 결심을 하면, 무리가 가고 힘에 겨워 오래 지탱할 수가 없고 쉽게 좌절하게 됩니다. 그리고 너무 금욕적인 결심만을 되풀이하면 심리적으로 거부감이 일어나기 쉽고, 결심 자체가 아무리 좋았다 하더라도, 그리고 내가 스스로 한 결심이라 할지라도 신바람 나는 의욕을 갖고 실행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러한 결심을 습관적으로 하다보면, 해 마다 오는 대림절과 사순절은 기다려지는 것이 아니라 부담스럽거나 먹게 하는 그 무엇이 될 겁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로 보나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순절은 우리 구원을 위하여 수난하시고 죽으셨던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며 지낼 대축제를 준비하는 기간이기에, 비록 회개하고 보속하는 기간이기는 하지만 기꺼운 마음과 희망이 넘치는 때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하는 우리의 결심도 이왕이면 더 밝은 마음으로 더 기꺼운 마음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결심의 유형에는 위에서 언급한 금욕적이거나 고행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나에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덕행을 더 적극적으로 실천하겠다고 새롭게 마음을 정하는 하나의 대안 될 수 있습니다. 덕행에도 여러 가지가 있고 한 가지 덕행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도 아주 다양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예로 절제의 덕을 더 철저하게 실천하기로 결심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한국 사회만을 전제로 한다면, 우리는 과거 어느 때 보다 풍요롭고 편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사건들을 잘 살펴보면 거의 모든 면에서 아쉬움 없이 살고 있거나 그렇게 살고자 하는 경향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철저한 절제 생활이 요구됩니다.

 

은 착한 일을 행하는 몸에 밴 확고한 마음가짐이라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사람의 덕은 네 개의 뿌리를 갖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절제입니다.

절제는 감각적 쾌락의 유혹을 조절하고 재화를 사용하는 데에 균형을 갖게 해 줍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803-1845항 참조).
또한 덕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고 하느님과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우리도 사랑하게 해 줍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에게는 하느님으로부터 자꾸 멀리 하려는 경향이 커 가고 있습니다. 하느님보다 더 중요하고 더 좋은 것을 끝없이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날로 황금만능주의와 극단적인 물질주의와 이기주의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우리의 경향과 사회 풍조를 바꾸기 위해서 오늘날 특히 절제의 덕이 필요한 것입니다.

절제 생활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끼니를 거르는 단식이 아니라 넉넉히 먹은 다음에 더 먹고 싶은 한 숟갈을 포기하는 것, 또는 많이 마신 다음 더 안 마셔도 되는 한 잔을 편안한 마음으로 희생하는 것 등은 절제 생활의 의미 깊은 시작이며 과정이라 하겠습니다. 큰 재산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써야 할 때 필요한 만큼 쓰고, 쓰지 말아야 할 때는 작은 돈이라 하더라도 근검절약하는 습관을 새롭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가고 싶은 데를 다 가지 않아도, 또 하고 싶은 일을 다 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자신을 키우는 것도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일인가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아,

주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느냐?

정의를 실천하는 일,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 그 일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미카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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