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축복하신 빵과 포도주

형제자매 여러분, 성 만찬 때 예수님께서 당신의 살과 피로 변화시키신 빵과 포도주에 대하여 자주 묵상하는 것은 대단히 소중하고 유익합니다.
우리가 주일 미사에 성실하게 참예하고 매일 미사까지 종종 참예한다 하여도, 막상 우리가 영성체를 통하여 우리 안에 모시는 분이 어떤 분이신지, 또 그분이 우리에게 오시면서 취하신 모습, 즉 빵과 포도주가 무엇인지를 얼마나 자주 묵상하시는지 질문하고 싶습니다. 미사 특히 영성체를 통하여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분이 왜 빵과 포도주의 형상을 취하시어 오시는지를 깨닫는다면, 우리들의 하루하루 생활은 언제나 평화와 사랑 안에 이어질 것이고, 이 세상의 어떤 시련이나 고통도 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사에 자주 가거나 봉헌하면서도 이와 같은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미사 중에 이루어지는 기적, 즉 빵과 포도주의 뜻을 깨닫지 못했거나 그 뜻에 아예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소중한 깨달음의 은혜를 받기 위하여 미사 중에 매번 반복되는 통상문 우리의 주위를 집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봉헌된 빵과 포도주가 축성되기 직전에 사제는 성찬제정 축성문을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스스로 원하신 수난이 다가오자, 예수께서는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쪼개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 하셨나이다.

 

성찬제정과 축성문미사성제의 절정이며 중심을 이룹니다. 집전 사제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친히 지금 여기서 당신의 말씀으로 이 빵과 이 포도주를 당신의 살과 당신의 피로 변화시키시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축성의 말은 사제가 하지만 빵과 포도주를 변화시키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얼마나 대한 일이며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성 만찬 때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빵과 포도주는 그 당시에 가장 흔한 음식과 음료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축복하심으로 인하여 그 흔하디흔한 빵이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주님의 살과 피로 변화됩니다. 하찮은 빵과 포도주가 이처럼 변화될 수 있다면, 우리 자신도 예수님께서 축복하여 주신다면, 그렇게 변화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지나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빵과 포도주를 드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즉 모든 빵과 모든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들고 계시는 그 빵과 포도주 만이 주님의 살과 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는 성사를 통하여 주님께서 선택하셨고 우리를 미사에 불러주심으로써 우리를 선택하여 거룩하게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축복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감사였습니다. 비록 손에 들린 한 덩어리의 빵과 한 잔의 포도주는 값으로 따지자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내려주신 소중한 선물로 받아들이시고 감사의 기도를 바치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어떻게 보면 대단한 존재가 아닐지 모르지만 하느님께는 다 소중하고 사랑스런 존재이고 예수님께서 감사의 축복을 해 주시는 존재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축복된 빵을 이제 쪼개어 나누어 주십니다. 빵이 먹히기 위해서는 부서지고 쪼개져야 합니다. 또 한 덩어리의 빵을 이루기 위하여 수많은 밀알들이 형체가 없어질 정도로 부서져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한 잔의 포도주가 나오기 위하여 수많은 포도알이 으깨져야 합니다. 우리 각자의 인생살이도 가지가지의 쪼개어짐과 으깨짐, 즉 아픔과 외로움과 아쉬움과 술픔 ··· 등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친히 수난과 죽음의 쓰라림을 겪으시며 인생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이 빵과 이 포도주는 나뉘어 먹히고 마시우기 위하여 축복되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전 생애는 우리를 위하여 제물로 바쳐진 삶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이것은 여러분을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입니다.”       “… 죄를 사하여 주려고 여러분과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핍니다.”

 

영성체를 하는 우리의 인생도 남을 위한 인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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