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묵상… 하느님 사랑에 대한 이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을 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아버지 하느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요한 14,9 참조) 사실 하느님께서는 여러 방식으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성경이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에서처럼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우리의 마음을 얻고자 하십니다. 최후 만찬과 십자가 위에서 심장이 찔리심과 부활 후 나타나심과 사도들을 통하여 초기 교회의 길을 인도하심에 이르는 그 놀라운 행위들을 통해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주님께서는 그 이후에 교회 역사에서도 계속 현존해 오셨습니다. 주님의 현존을 드러내 보이는 사람들과 주님의 말씀과 성사들을 통하여, 특히 성체성사를 통하여 언제나 새롭게 우리를 만나러 오십니다. 교회의 전례와 기도, 그리고 신자들의 생기 넘치는 공동체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분의 현존을 인식하며, 그리하여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그 현존을 깨닫는 법을 배웁니다.

언제나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또한 계속하여 먼저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으로 응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감정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알고 체험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으므로 그 응답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사랑이 꽃필 수 있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첫 번째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中에서

전례학회 웹사이트 운영진 작성
가톨릭 전례학회는 전례학에 관심이 많으신 여러분들께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자료를 올릴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할 목적으로 마련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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