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들의 미사참례(8) – 온전하고 완전한(plena) 참여

‘전례헌장’은, “어머니인 교회는 모든 신자가 전례 거행에 의식적이고 능동적이고 ‘완전한’(plenam) 참여를 하도록 인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한 참여는 전례 자체의 본질에서 요구되는 것이다 … 그리스도인은 세례의 힘으로 그 참여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전례헌장 14항; 참조. 미사지침 18항)라고 말하면서, 완전한 참여는 전례 자체의 본질에서 요구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권리와 의무라고 설명한다. 또한 ‘전례헌장’은, “거룩한 어머니인 교회는 그리스도교 백성이 거룩한 전례에서 풍성한 은총을 더욱 확실히 받도록 전례 자체의 전면 쇄신을 적극 추진하고자 한다 … 그리스도교 백성이 될 수 있는 대로 그것들을 쉽게 깨닫고, 공동체 고유의 전례 거행에 ‘온전히’(plena)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온전한 참여를 돕는 방향으로 전례 자체의 쇄신, 즉 전례문과 예식의 쇄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천명한다.

라틴어 어휘 ‘plenus,-a,-um’(형용사), ‘pleniter’(부사)는 “가득한”, “충만한”, “배부른”, “충분한”, “완전한”, “온전한”, “풍부한”, “힘찬”, “장성한” 등의 다양한 의미를 나타낸다.1> 이들 중 한국어판 ‘공의회문헌’에서 채택한 “완전한”, “온전한”에 해당하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그렇다면, ‘완전한/온전한’(plena) 참여란, 부족함이 없는 충분한 참여이고, 결점이나 흠결이 있는 참여가 아니라 결점이 없는 참여를 말한다. 미사에 완전하게 참여한다는 것은, 습관적으로 미사에 늦게 오는 것과 다른 일에 바쁘다고 미사 도중에 서둘러 자리를 뜨는 것을 지양하고, 미사가 시작하기 전에 충분한 시간여유를 가지고 미사 거행장소에 도착해서 미사를 준비하고 또 미사가 마칠 때까지 그곳에서 공동체와 함께하는 것을 완전한 참여라고 할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전례헌장’은 “사제의 영성체 에 신자들이 같은 희생 제사에서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더욱 완전한’(perfectior) 미사 참여는 크게 권장된다.”(전례헌장 55항)라고 말한다.3> 또한 ‘미사지침’은 “성가대 자리는… 성가대원들이 맡은 임무를 쉽게 수행하고 편리하게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 미사에 완전하게(plena) 참여할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미사지침 312항)라고 말함으로써, 영성체에 참여하는 것이 미사전례에 대한 완전한 참여라고 설명한다.4>
결론적으로, ‘완전한’(pia) 참여란, 첫째로, 미사의 처음부터 마침까지 전례거행에 참여하는 것을 말하며, 둘째로, 서양에서 영성체를 안 하고 미사에만 참석하여 주일의무를 지키는 교우들이 늘어나면서, 성체를 모시는 미사 참여를 완전한 참여로 제시한다.

영성체의 슬픈 퇴조 현상은 아마도 동방 교회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은데 문제를 일으킨 것은 성사이신 하느님(예수 그리스도)이 성부이신 하느님과 전적으로 동등하지는 않다고 믿는 아리우스의 이단적 교설 때문이었다. 성자는 영원으로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또 성부께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께서 진짜 하느님은 아니라는 주장이 나왔다. 교회는 당연히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그 주장을 단죄했다. 그러나 아리우스주의는 공식적으로는 생명이 끊겼지만 굴복하지는 않는 이단들 중의 하나가 되어, 놀랄 만큼 많은 추종자들을 끌어당겼고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여러 세기 동안 존속했다. 이런 이유로 가톨릭 신학자들과 설교자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특별한 강조점을 두어야 했다. 그러나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고 예견할 수도 없었지만 실제로 초래된 결과는 신자들이 하느님이신 그리스도의 그 큰 위엄에 대한 경외감으로 너무 압도되어 그분을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대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형제이시라는 것과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로서 다가가기 쉬운 분이시라는 사실에 대한 기쁨에 찬 인식의 결과, 그토록 가득한 신뢰로 그분의 몸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게 했었으나, 이제 그분이 지닌 신적인 위엄에 대한 경외감으로 대체되어, 신자들이 존경심 때문에 그분과 거리를 유지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태도는 또한 서방교회에도 파급되어 신자들이 점점 더 드물게 성체를 모시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1215년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는 누구나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성체를 모셔야 한다는 것을 의무로 규정짓기에까지 이르렀다.
초기와는 이 얼마나 대조적인가! 트렌토 공의회 이후에는 사정이 다소 개선되었다가 17세기에는 존경에 찬 경외심을 지나치게 독려하는 얀세니즘이라는 또 하나의 이단의 영향으로 영성체는 다시금 퇴조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두 극단, 즉 존경심의 결여와 그 지나친 강조를 피해야 한다. 신자들이 영성체 바로 전에 함께 말하게 되어있는 본문은 그러한 올바른 균형을 잡아준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참조. 마태 8,8)5>

———————————————————————
각주1> 라틴-한글사전, “plenus,-a,-um”.
각주2> 민중엣센스국어사전, “완전”, “온전”.
각주3> 참조. 가톨릭교회교리서 1388항; 미사지침 13항; 트렌토 공의회, 미사성제교의, 제6장: DH 1747항.
각주4> 참조. 예부성성, 성음악훈령(1976. 3. 5) 23항: AAS 59(1967) 307.
각주5> 참조. Howell, 진실한 응답, 124-126.

———————————————————————
[이 글은 사목 2004년 3월호, 가톨릭신학 2004년 6월호에 실린 원고 “신자들의 미사참례”를 정리한 것입니다. 글의 전체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장신호 신부 드림.]

☀신자들의 미사참례(1) – 머리말[바로가기 클릭]
☀신자들의 미사참례(2) – 능동적 미사참례의 재발견[바로가기 클릭]
☀신자들의 미사참례(3) – 전례헌장에 나타난 능동적 미사참례의 필요성, 구현, 증진방안 [바로가기 클릭]
☀신자들의 미사참례(4) – 잘 알고(scienter) 참여[바로가기 클릭]
☀신자들의 미사참례(5) – 의식적(conscie) 참여[바로가기 클릭]
☀신자들의 미사참례(6) – 경건한(pia) 참여[바로가기 클릭]
☀신자들의 미사참례(7) – 내적 외적으로 능동적(actuosam internam et externam) 참여[바로가기 클릭]
☀신자들의 미사참례(8) – 온전하고 완전한(plena) 참여[현재 페이지]
☀신자들의 미사참례(9) – 효과적인(fructuose) 참여[바로가기 클릭]
☀신자들의 미사참례(10) – 나가는 말[바로가기 클릭]

———————————————————————
*위 사진 출처->

Creative Commons License  This work is licensed under a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Brazil License.

장신호 신부 작성
대구 출생(1966년). 교황청 성 안셀모 대학 전례학 석사(1996년 9월 ~ 1998년 8월) 학위 취득.사제수품(1998년 8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대구대교구 봉덕성당 보좌신부(1998년 9월 ~ 1999년 8월).교황청 성 안셀모 대학 전례학 박사(1999년 9월 ~ 2002년 2월) 학위 취득.대구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2002년 3월 ~ 2009년 8월).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전례서 편찬 담당(2009년 9월 ~ 2012년 현재).이메일janglitu@gmail.com

댓글 남기기

당신의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

학회 추천칼럼
이완희 신부

세상의 전례 (전례학 입문 4)

전례는 연극이 아니에요  얼마 전에 어떤 신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신부님, 왜 전례는 이렇게 재미가 없나요? 전례를 재미있게 꾸밀 수는 없나요?” 또 어떤 청년에게는 이런 말도 들었다. “젊은 전례, 열린 전례를 집전하기 위해서 우리 청년 모임에서는 청년들의 관심사로 말씀의 전례를 온통 꾸미고 중요 부분을 모두 청년의 구미에 맞게 바꿔서 미사를 드렸는데 참 좋았어요.” 이를테면 전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