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병환자”를 만납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0-45

그때에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42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44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

오늘 복음은 어떤 나병환자의 일입니다. 그것도 2000년전 일!

“예수님이 나병환자인 그를 치유해 주셨고 그는 예수님의 지시대로 치유이후 행동해야 했는데 침묵하지 못하고 이 사실을 퍼뜨려 예수님은 드러난 행동을 못하셨다.”

이것이 오늘 복음의 내용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건의 경유일 뿐입니다.

우리 한번 함께 관상해 봅시다. 복음의 장면으로 함께 들어가 봅시다.

먼저 나병환자가 도움을 청하면서 어떤 행동과 말을 했는지요?

그는 무릎을 꿇습니다. 인간으로서 가장 낮은 자세를 취합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나의 앞을 막고 갑자기 무릎을 꿇는다면 나는 당연히 정지한   그를 주목할 것입니다. 더욱이 그는 나병환자입니다. 당시 나병환자는 매우 비참한 생활과 인간성이 무시되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절박한 처지로 무릎을 꿇었지만 분명 하게 말합니다.

“스승님께서는 하시고자 하면 저를”

치유자로 예수님을 스승님으로 표현한 그의 마음 그리고 그 절박함 중에서도 무릅꿇고

“제발 저를 좀 ……치유해 주시길 저는 간절히 원합니다.”가 아닌 “하시고자 하면!”이란 말을 했다는 것은 매우 주목받아 마땅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할 때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와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주님의 뜻에 비취어 보면 오늘 나병환자의 청은 주님의 기도에 부합되는 것입니다.

나의 뜻보다 먼저 하느님의 뜻을 구하고 이루어지길 바라는 정신은 오늘 드디어 구원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의 용기있고 겸손한 무릎꿇음은 또한 우리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가톨릭 전례안에서 우리는 자주 무릎을 꿇습니다. 점점 무릎 꿇는 모습을 신자들 사이에서 볼수 없고 성당에서 장괴틀이 사라져 가지만 베네딕또 교황 16세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느님앞에 무릎꿇음은 가장 신앙인으로서 아름다운 전례동작이며 하느님자녀의 겸손된 신앙고백입니다.

그의 무릎꿇음과 그의 올바른 신앙고백으로 예수님은 가엾은 마음이 들었고 예수님은 정확히 그의 신앙 고백에 같은 문장으로 대답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우리는 비록 육신적으로 나병환자가 아니지만 이 세상에 살면서 지은 죄와 나약함으로 하느님 앞에 영적인 나병환자일지 모르지만 오늘 복음의 나병환자의 교훈을 통해

우리는 또한 신앙의 모범을 배웁니다.

적어도 한달에 한번씩 우리는 고백성사실에서 무릎을 꿇고 죄의 사함과 치유를 받아야겠습니다.

우리의 죄는 그분의 사랑으로 교회의 성사집행을 통해 늘 깨끗하게 됩니다.

 

허윤석 신부 작성
네이버나 다음의 검색창에 "회복의 시간"을 치면 허윤석신부님의 홈페이지가 나온다. 오랜시간동안 신자들을 위한 힐링피정과 힐링음악 그리고 잔잔한 단상과 묵상이 풍성히 있는 이곳으로 초대한다. 강론은 사제의 가장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현재 성모기사회 잡지에 "곰곰히"라는 코너를 그리고 가톨릭 신문에 전례잠짜를 집필하고 있다.

2 Responses to “어떤 나병환자”를 만납시다.

  1. 저희 본당도 장괘틀이 맨 앞줄만 있어서…맨앞줄에서 미사 봉헌하는데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도미니카사랑
    도미니카사랑 2012년 1월 13일 at 8:51 pm 응답
  2. 오늘 받은 저의 고통 또한 주님의 뜻이라면 달게 받겠습니다…라고 기도하니, 오늘 제 상처가 치유되었습니다.. 오늘 복음 내용처럼, 오늘 제가 영적 나병 환자였습니다. 그리고..주님의 뜻을 먼저 받드니 주님께서 치유시켜 주심을 제가 다시 한번 삶에서 확인케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김이진 2012년 1월 13일 at 11:52 pm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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