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속 성경 한 말씀- 10. 감사송의 대화구: 주님의 현존을 느끼고 그분께 마음을 다해 감사를 드리는 기쁨!

지난 8월14일부터 18일까지 4박5일이라는 교황님의 한국방문기간은 한국천주교회의 잔치이면서 또한 모든 한국인들이 힐링되는 기간이기도 했다. 특히 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던 많은 소외된 사람들에게 그러했다. 왜 그랬을까? 그리스도교에서도 로마가톨릭이라는 종교의 지도자가 왔다고 한국전체가 술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이천년전의 그리스도의 모습과 향기를 내는 분이 찾아와서가 아닐까 한다. 종교적, 사회적, 인종적 차별과 두려움을 넘어선 사랑으로 다가오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인격에 매료된 것이다. 이분이 이렇듯 그리스도를 드러낼 수 있는 힘은 항상 주님의 현존을 느끼고 그분께 마음을 다하며 감사를 드리는 기쁨 속에서 지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미사 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지니셨던 자세와 태도를 습득할 수 있다. 그곳이 바로 감사송의 대화구이다. 이 대화구는 3세기 초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히뽈리토의 「사도전승」 4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또한 사제와 함께.

✚ 마음을 드높이.

◎ 주님께 올립니다.

✚ 우리 주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주님의 현존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는 사제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는 일상적인 히브리인들의 평화인사 “평화가 당신과 함께”를 모델로 한 오래된 이 전례 인사는 현행 미사에서 시작 예식, 복음 봉독, 감사기도, 마침 예식 등에 네 번 나온다. 어찌 보면 미사를 구성하고 있는 예식의 시작 항상 주님의 현존을 기원하는 이 인사가 배치되어있는데 이는 교회가 미사의 핵심이 바로 주님의 현존에서 시작해야 함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사제는 현존하시는 주님과 함께 감사기도를 바치기 위하여 교우들에게 맞갖은 마음의 자세를 갖추기를 바라면서 “마음을 드높이”라고 권고하면, 교우들은 “주님께 올립니다”라고 응답한다. 이는 다른 신들과 다른 제단, 그리고 다른 예배에 마음을 쓰며 하느님께 멀어졌던 이스라엘 민족이 주님의 제단에 돌아와서 진실하게 회심하여 마음과 몸, 전체를 주님께 향하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애가서의 “손과 함께 우리의 마음도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들어 올리세”(애가 3,41)라는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3세기의 치쁘리아노는 이 말을 “육적이고 세속적인 모든 생각을 멀리하여 오직 기도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사실, 우리는 기도 시간에 많은 유혹과 분심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우리의 나약함을 예전부터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주님 이외에 아무것도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권유를 기도문 안에 넣은 것이라 하겠다. 또한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였지만 자기 자신을 완전한 자기 포기와 자기 봉헌의 상징으로서 하느님께 온전히 넘겨드리는 산 제물로 봉헌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이러한 봉헌된 자세로서 주님과 함께 본격적인 감사기도를 바치기 위해서 사제는 교우들에게 “우리 주 하느님께 감사합시다”라고 하며 주님께 감사의 마음을 드러내자고 청한다. 유대인의 경우, 하카다 예식의 식사 끝에 가장이 잔을 들고서 “우리 주 하느님께 찬양합시다”하고 권한 다음 찬양기도를 시작한다. 그래서 이 감사 권고는 단순한 감사송에 대한 권고일 뿐 아니라 감사기도 전체에 대한 권고이기도 하다. 이러한 권고에 대해서 교우들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라고 한다. 이러한 동의 역시 유대인의 “쎄마 기도”에 나타나며, 일종의 성대한 ‘아멘’이다.

‘감사’자신이 바라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만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힘겹고 어려울 때도 그전에 받은 은혜와 고마운 일들을 기억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진정한 감사의 자세라고 할 수 있는 데 그것을 이미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몹시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 기도를 바치셨다. 이스라엘 백성 대부분이 당신의 회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백성의 지도급 인사들은 당신을 배척하였지만, 소수의 사람이라도 당신을 이해하고 따라준 것에 대해 성부께 감사를 드리셨던 것이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마태 11,25). 사도 바오로가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1테살 5,18)라고 충고하기 훨씬 이전에 예수님은 이를 몸으로 실천하신 것이다. 이렇게 역경 중에도 감사할 줄 아셨던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앞둔 힘겨운 상황에서도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하느님 아버지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셨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8월20일에 있었던 수요 알현에서 “이번 한국 사목방문의 의미는 기억, 희망, 증언이라는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며 한국 방문 의미를 밝히셨다. 이어서 “교회는 기억과 희망의 수호자”라면서 “과거 순교자들에 대한 기억은 현재 새로운 증언이 되고 또 미래의 희망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기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주님의 현존에 대한 기억이며, ‘희망’ 주님께만 모든 신뢰를 두겠다는 마음의 자세이고 ‘증언’은 이승에서의 모든 은총에 감사드리는 삶이라고 재해석할 수 있다. 곧 감사송의 대화구에서의 기원들을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다시 확인시켜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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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속 성경 한 말씀> 목차
1.성경과 전례: 불가분의 관계
2.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앙고백이며 세례를 상기시키는 십자성호와 성호경(마태 28,19)
3.주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축복의 인사
4.자비송(마태 9,27): 자비는 믿음이 있어야 실현된다
5. 대영광송: 루카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6. 말씀 전례: 말씀(Logos)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를 구원하시고 또한 우리를 양육하신다
7. 강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이사 52,7)
8. 신앙고백: “마음으로 믿어 구원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로마 10,10)
9. 예물봉헌: 우린 과연 모든 것을 주신 하느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
10. 감사송의 대화구: 주님의 현존을 느끼고 그분께 마음을 다해 감사를 드리는 기쁨! [현재 페이지]
11. 거룩하시도다: 이사 6,3과 마태 21,9 ‘거룩해서가 아니라 거룩해지고 싶은 열망인 담긴 찬가’

윤종식 신부 작성
1995년 서품, 1995년-1997년 불광동본당 보좌, 1998년1월-2008년 6월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전공, 2008년 9월-2010년 8월 화정동본당 공동사목 및 대표주임, 2010년9월-2012년 2월 정발산본당 주임. 2012년 3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현,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전례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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