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속 성경 한 말씀- 11. 거룩하시도다: 이사 6,3과 마태 21,9 ‘거룩해서가 아니라 거룩해지고 싶은 열망인 담긴 찬가’

본당 주임의 영명축일이 되면 선물과 축하메시지를 많이 받는 행복한 날이면서 또한 부담도 되는 날이다. 왜냐하면 축하인사와 함께 기도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훌륭한 사제 되세요.’ 또는 ‘성인 신부 되세요.’라는 맺은 말들이 아무래도 격려도 되면서 참된 사제로 잘 살라는 권고도 되기 때문이다. 영명축일이 다가오면 ‘성인 신부’라는 화두를 가지고 끙끙 앓는 경우가 있다. 난 아직 ‘성인’ (聖人) 곧 거룩한 사제가 아니기에 어떻게 하면 성인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성인이 되신 사제들의 모범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삶의 방식은 각기 다르지만 성인 사제들 모두가 하느님과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자신의 원의가 아닌 하느님의 뜻(voluntas Dei)를 우선시하며 살아갔다는 것이다. ‘거룩함’의 원천이시며 정점인 하느님에 대한 찬미가를 매일 드리는 미사에서 한 목소리로 기도하면서도 아직도 거룩함하고는 먼 자신을 발견할 때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아무래도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제대로 못 깨달아서가 아닐까 한다. 성찬 전례의 감사송 마지막을 장식하는 ‘거룩하시도다’를 살펴봄으로써 하느님의 거룩함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려 한다.

‘감사송’(Præfatio)는 ‘감사기도’(Eucharistia)의 기도 주제인 ‘감사’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미리 보여주는 ‘서언’ 역할을 수행한다.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행복하기를 바란다. 특히 산상수훈(마태 5,3-12 참조)에 나오는 복된 자들처럼 하느님 안에서 행복한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데이비드 타인들 라스트가 말한 “행복이 우리로 하여금 감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감사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어찌보면 교회는 이 명제를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지 모른다. 감사를 통해서 행복해지는 이 원리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가 바치는 기도의 기본 원리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양의 감사송의 성대한 마무리인 ‘거룩하시도다’(Sanctus)는 혼자 바치는 것이 아니라 “회중 전체가 하늘의 천사들과 성인들과 일치하여 노래”(미사경본총지침 79항)하거나 외운다. 이 찬미가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그 영광! 높은 데서 호산나!

*후반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높은 데서 호산나!

 

앞부분은 이사야 예언서에서 천사들의 무리가 부르는 찬양의 송가를 큰 소리로 노래한 것을 기억하게 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이사 6,3). 이 노래는 전통적으로 ‘거룩한’이라는 뜻의 라틴어 ‘상투스’(Sanctus)라고 불렸다.
이 상투스에 ‘찬미받으소서’(Benedictus)라는 찬가가 첨가된 것은 그리스도교 역사의 창기였다. ‘찬미받으소서’는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였을 때 예루살렘 사람들이 일제히 예수님을 향하여 노래했던 그 찬가이다.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마태 21,9).
기원후 96년에 로마의 클레멘스는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이 찬가를 노래했다고 전해주며, 비슷한 시기의 「디다케」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반면에 ‘거룩하시도다’는 없으며, 3세기의 히뽈리투스의 「사도전승」에서도 전해주지 않으며 로마의 감사기도에도 4~5세기는 물론 6~7세기까지 발견되지 않는다. 반면에 2세기 이후의 동방 문헌인 투무이의 세라피온과 예루살렘의 치릴로 저서 등에서 ‘거룩하시도다’ 찬가에 대한 흔적이 발견되는 것을 보면 서방에서는 ‘찬미받으소서’ 찬가가 널리 퍼졌고 동방에서는 ‘거룩하시도다’ 찬가가 전례에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2세기경에 유대인들이 안식일 아침에 회당 예배 기도로 바친 “세모네 에츠레”의 제3청원기도에 세 번의 ‘거룩하시도다’가 나오며 또한 요한 묵시록 4장 8절에서도 ‘거룩하시도다’로 시작하는 찬가와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다.

하느님의 거룩하심은 구약성서가 자주 반복하여 강조하는 하느님의 대표적인 본질이다. 그분은 온전히 거룩하신 분이기에 그분께 속한 백성, 땅, 성전 등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이 성서의 주된 가르침이다. 세 번 ‘거룩하시도다’ 최상급을 나타냄과 동시에 점점 거룩함강도를 높이는 표현법이다.

‘호산나’는 아람어로서 (히브리어는 ‘호시안나’), 직역하면 ‘도움을 주십시오’이지만(시편 118,25; 28,9; 2사무 14,1; 2열왕 6,26), 일반적으로 기뻐하며 외치는 공동체의 환호로 쓰인다. 여기서는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룩하신 구원업적에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외치는 백성의 환호라고 볼 수 있다.

반부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는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시고,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시어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던 예수님께서 이제 빵과 포도주의 모습으로 제대에 오심을 환영하고 찬양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참으로 거룩하시고 찬양받으실 분을 ‘나’와 ‘너’ 그리고 ‘지상’과 ‘천상’의 구분을 넘어선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가 되어 한 목소리로 ‘거룩하시도다’를 노래하고, 그분의 뜻을 우리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갈 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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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속 성경 한 말씀> 목차
1.성경과 전례: 불가분의 관계
2.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앙고백이며 세례를 상기시키는 십자성호와 성호경(마태 28,19)
3.주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축복의 인사
4.자비송(마태 9,27): 자비는 믿음이 있어야 실현된다
5. 대영광송: 루카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6. 말씀 전례: 말씀(Logos)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를 구원하시고 또한 우리를 양육하신다
7. 강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이사 52,7)
8. 신앙고백: “마음으로 믿어 구원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로마 10,10)
9. 예물봉헌: 우린 과연 모든 것을 주신 하느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
10. 감사송의 대화구: 주님의 현존을 느끼고 그분께 마음을 다해 감사를 드리는 기쁨!
11. 거룩하시도다: 이사 6,3과 마태 21,9 ‘거룩해서가 아니라 거룩해지고 싶은 열망인 담긴 찬가’ [현재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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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식 신부 작성
1995년 서품, 1995년-1997년 불광동본당 보좌, 1998년1월-2008년 6월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전공, 2008년 9월-2010년 8월 화정동본당 공동사목 및 대표주임, 2010년9월-2012년 2월 정발산본당 주임. 2012년 3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현,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전례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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