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마침영광송: 성자와 성령과 더불어 성부께 영광을 드리는 교회의 찬미가

새해를 시작하면서 한해의 살아가는 모토를 무엇으로 정하셨습니까?

저는 예수회의 모토인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ad maiorem Dei gloriam)를 소개하며 한해를 시작할까 한다. 자신에게 모든 영광이 오기를 기대하는 이기적인 우리들에게 모든 영광을 받으실 분은 하느님이시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 어떤 상황에서든 보다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임을 확인시켜주는 모토이다. 비록 자신이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성취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음을 기억하게 하는 말이 있다. 누구누구 ‘덕분에라는 말이다. 우리는 하느님 덕분에 창조되었고, 이렇게 살고 있으며 그분이 보내주신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인해서 구원의 길을 걷고 있음을 잊지 않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대영광송을 감사기도 마치면서 성반과 성작을 든 사제의 입을 통해서 바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그리고 신자들은 “아멘”이라고 응답한다.

영광송 Doxologia ‘영광을 돌리다’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공적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선포하거나 찬양하는 기도나 노래 양식을 말한다. 주요 기도를 영광송으로 마감하는 관습은 이미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의 기도에서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시편을 들 수 있는데, 본래 다섯 권의 소책자 형태로 되어 있다가 한 권으로 합쳐진 시편집은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곧 시편집은 1-41장, 42-72장, 73-89장, 90-106장, 그리고 107-150장의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분의 마지막 장(41, 72, 89, 106, 150장)은 영광송으로 끝나며, 마지막 150장은 장 전체가 영광송이다.

감사기도의 전체 주제를 요약하는 이 기도를 우리는 현재의 것과는 다소 다르지만 3세기 히폴리토의 『사도전승』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때 사제는 주님의 몸과 피를 아버지께 바치며 제대 위로 높이 들어 올린다. 사제가 하는 이 기도의 첫 구절은 우리를 위해 죽음을 감내하시는 그리스도의 결정을 통해서 구원이 이루어졌음을 상기시켜준다. 곧 우리는 예수님 스스로가 하느님께 가는 길임을 밝히셨음을 기억하는 것이다.“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그리스도와 함께” 사제는 아버지께 모든 것을 높이 들어 올린다. ‘예물 준비’에서 우리는 이미 아버지께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면서 우리 자신도 헌금을 봉헌하면서 하나의 봉헌물로 보아달라고 청했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께 봉헌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 아우구스티노는 고백록에서 ‘님 위해 우리를 내시었으니, 오 주님, 우리 마음은 당신 안에서 쉬기까지 평안하지 않습니다.’하고 말했듯이, 우리 마음의 갈망은 예수님 안에서 비로소 완전하게 된다.

“성령으로 하나 되어”라는 말은 성 바오로가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4장 3절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에서 나온 말이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당신의 몸과 피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 머물러 계시는 주님의 현존을 사제가 제대 위에 높이 들어 올려 감사의 제물로 봉헌함과 같이, 감사 기도는 아버지 하느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으로 완전하게 된다. 교회는 자신의 머리이시자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과 하나되어 아버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

아버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은 바로 예수님 전 생애의 목표이다. 그래서 그분은 최후 만찬 석상에서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요한 17,4)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아버지의 뜻을 당신 삶의 중심에 두고, 그 뜻을 실현하려 혼신의 힘을 다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창세기 11장의 바벨 탑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그들은 하느님을 제쳐 놓고 자신들을 드높이려는 잘못된 길을 갔다.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 그렇게 해서 우리가 온 땅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자.”(창세 11,4) 어찌보면 하느님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하느님이 없는 것처럼 자신의 이름과 명성, 권력을 위해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오만은 그때까지 하나였던 말이 뒤섞여 서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지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원했던 바를 이루지 못한 채 세상 곳곳으로 흩어지게 된다(창세 11,7-9). 반면에 예수님은 당신의 이름을 드높이지 않으시고 겸손과 희생으로 아버지 하느님께 영광을 드높이며 모든 인류를 하나로 모으기를 원하셨다. 우리는 마침영광송을 통해서 예수님의 이러한 파견 목표를 계속해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성찬에 참여한 교우들은 “아멘”이라고 대답한다. 이는 히브리어“그것은 진실입니다”라는 뜻이다. 이 응답은 유스티노의 『호교론』65장과 68장에서 나온다. 4세기말의 성 예로니모는 사제가 감사기도를 마치면 교우들은 “아멘”하고 응답하였는데, 그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웅장하게 들렸다고 전한다. 교우들은 “아멘”이라고 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사제의 영광송에 동의할 뿐 아니라, 감사기도 전체에 대해서도 동의했음을 표시한다. 이 응답은 환호이며 그냥 외지 말고 성대하게 노래로 불러 성부께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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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속 성경 한 말씀> 목차
1.성경과 전례: 불가분의 관계
2.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앙고백이며 세례를 상기시키는 십자성호와 성호경(마태 28,19)
3.주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축복의 인사
4.자비송(마태 9,27): 자비는 믿음이 있어야 실현된다
5. 대영광송: 루카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6. 말씀 전례: 말씀(Logos)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를 구원하시고 또한 우리를 양육하신다
7. 강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이사 52,7)
8. 신앙고백: “마음으로 믿어 구원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로마 10,10)
9. 예물봉헌: 우린 과연 모든 것을 주신 하느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
10. 감사송의 대화구: 주님의 현존을 느끼고 그분께 마음을 다해 감사를 드리는 기쁨!
11. 거룩하시도다: 이사 6,3과 마태 21,9 ‘거룩해서가 아니라 거룩해지고 싶은 열망인 담긴 찬가’
12. 성찬 제정과 축성문: 성찬 제정과 축성문에서 보여주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필리 2,5) 간직하며 살아가기
13. 마침영광송: 성자와 성령과 더불어 성부께 영광을 드리는 교회의 찬미가 [현재 페이지]

윤종식 신부 작성
1995년 서품, 1995년-1997년 불광동본당 보좌, 1998년1월-2008년 6월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전공, 2008년 9월-2010년 8월 화정동본당 공동사목 및 대표주임, 2010년9월-2012년 2월 정발산본당 주임. 2012년 3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현,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전례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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