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날 : 나의길 – 예수 그리스도(1)

1. 행복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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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행복과 불행사이에서 흔들리는 시계와 같다. 산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기뻐지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슬퍼지는 경우가 있다. 사실 행복하다가 불행하게 되고, 불행하다가도 행복해 지는 것이 삶이다. 결국 우리들은 기쁨과 슬픔사이에 왔다 갔다 하는 추와 같은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 행복을 주시고, 누구에게는 불행을 주실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주님께서는 착한 사람에게는 행복, 악한 사람에게는 불행을 주시는가? 그러면 나는 지금 행복한가? 불행한가? 착한 사람인가? 악한 사람인가? 하는 복잡한 질문을 하게 된다.

사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행복이나 불행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앞에 놓인 선택의 기회에서 스스로가 결정을 한다. 행복과 불행이라는 두 갈래에서 선택을 하는데, 올바로 선택을 하게 되면 행복하지만, 선택하는 과정에서 착각이나, 자존심, 오해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면 불행해 지는 경우도 있다. 올바른 선택을 하게 되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겠지만,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면 후회와 번민을 하게 된다.

삶의 여정 속에서는 불행이나 불편, 억울함 등, 내가 원하지 않는 것들과 행복, 평화 그리고 편안함 등 원하고 있는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행복과 불행의 차이는 무엇인가? 행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였으며, 불행에 처해 있을 때,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행복과 불행은 선택의 결과이다. 행복은 잘 선택하는 것이고, 불행은 나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이라 생각하고 싶지만 내가 선택한 것들의 결과이다.

행복과 불행이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면 자신이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떤 상태인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잘못된 선택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다면, 바로 그 순간에 선택의 방향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마음을 돌리는 것이 최선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께 더없이 소중한 존재이며, 하느님은 매 순간 당신을 보살피시고 우리들을 존중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2. 성경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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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르코 1, 29-39

그들은 회당에서 나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갔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시몬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시고, 산에 오르셔서 혼자 기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역할에 대해 항상 염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부의 의지를 잘 알고 계시고, 자신의 역할에 대해 잊지 않으신다. 또한 세상의 유혹이나 명예에 대해 초연하게 대처하심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신원변화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누가 인정해 주고 환대해 주는데 그 자리를 박차고 나설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박수 받고 환대 받으실 때 떠날 수 있는 분별력과 결단력을 갖고 계신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시기에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들은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 그리고 주변의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기보다 오히려 자만심 때문에 착각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다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환대를 받지만 자신의 역할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통해 당신의 길을 분명히 가신다.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아니 그리스도를 더욱 잘 따르겠다면, 선택과 분별력은 언제나 함께 한다. 삶 속에서 선택하고 분별해야 하는 것이 어떤 것이며, 어떤 은총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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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학균 신부의 “주님과 함께 하는 8일 산책”
1) 다섯째 날 : 나의 길 – 예수 그리스도(1) [현재 페이지]
2) 다섯째 날 : 나의 길 – 예수 그리스도(2) [바로가기]
3) 다섯째 날 : 나의 길 – 예수 그리스도(3)

조학균 신부 작성
1987년 예수회 입회,1995년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 신학부 졸업,1996년 사제서품,1998년 로마 안셀모 대학 전례학 석사,2003년 로마 안셀모 대학 전례학 박사,현재 대전가톨릭대학 전례학교수 및 영성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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