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 날 –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지 못하는 이유(1)

1. 회개와 용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도 가까이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 그리스도는 조건 없이 기꺼이 도와주시며 치유해 주시는 분임을 알고 있으면서(마태 9장 18-26) 가까이 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죄나 잘못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기 때문이거나(마태 8장 28-34), 자기중심적이거나 자기애가 강한 사람들이라서 멀리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존심 때문에 다가가지 못하며, 실천보다 을 앞세우는 경우에 있어서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가가기 힘들다. 예를 들면 많은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은 자신의 알고 있는 하느님의 정의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보다 말로 타인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데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은(루가 11장 37-54) 예수그리스도의 용서보다 자신들이 결정한 판단이나 단죄를 선택하였기에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심적인 은 자기가 갖고 있는 기준에 의해 사람이나 사건이나 사물을 판단한다. 자신의 사랑은 로맨스이지만, 타인의 사랑은 불륜이라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일하는 스타일은 열성적이고 정열적이지만, 타인이 하는 일은 성급하고 즉흥적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자신에 대해 특별히 사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타인을 인정하는데 인색하다.

그리스도인들은 타인의 수고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타인의 일에 대해 불평을 하는지 아니면 감사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준비된 음식을 잘 먹고 난 후에 음식을 만든 이에 대해 “음식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을 이해 할 수 없다”는 식의 표현을 하거나, 아니면 “이런 음식을 만드는데 너무 고맙고, 훌륭한 대접을 받아 감사하다”라고 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사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회의나 모임을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많은 경우 자기중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중심적인 사랑을 보여 주신 것이 아니라, 성부 즉 하느님 중심적으로 사랑을 보여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이타적인 배려와 관심이다. 성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에 대해 새롭게 해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그리고 우리들을 위한 올바른 해석을 하고 계신다.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타인에 대해 관심과 배려 그리고 인내를 갖고 사랑으로 대해야 할 것이다.

 

 

2. 성경묵상

 

1) 마태 7장1-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매력적인 얼굴을 갖고 싶다면 부드러운 미소를 보여주고, 사랑스러운 눈을 갖고 싶다면 상대방의 장점을 찾아보고 기뻐해라. 심판한다는 것은 내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상대방의 장점보다 단점 혹은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어 상대방을 충고하려는 우월의식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도 무시되어선 안 되며, 우리 모두는 각자의 어려움과 부족함을 갖고 사는 것이다. 내가 도움을 주고 있을 때 다른 한 편으로는 도움을 받고 있음을 기억하자. 우리가 두 손을 갖고 있는 이유는 한쪽은 도움을 주고, 다른 한쪽은 도움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나의 잘못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는 이미 그것은 약점이 아니라 매력이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의 잘못을 보고 실망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들이 사랑을 나누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시는 분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이란, 어찌 보면 손해보고, 오해받고, 수고만 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눈으로, 세상의 잣대로 재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삶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잣대가 따로 있는데 손해 보는 삶의(마태 5, 38-42) 방식과 코린토 2서(6,1-10)에서 언급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를 직접적으로 그리고 우회적 설명하고 있다. 견디고, 참아내는 그리스도인들은 행복하고, 은총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용기를 잃지 말고, 힘내며 주어진 현실에서의 어려움을 이겨내려는 그리스도인들이 되도록 은총을 청해야 할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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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학균 신부의 “주님과 함께 하는 8일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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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학균 신부 작성
1987년 예수회 입회,1995년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 신학부 졸업,1996년 사제서품,1998년 로마 안셀모 대학 전례학 석사,2003년 로마 안셀모 대학 전례학 박사,현재 대전가톨릭대학 전례학교수 및 영성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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