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 날- 행복한 신앙생활과 예수 그리스도 만나기(2)

2. 성경묵상

 

1) 마태복음 20 1-16

“하늘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와 같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그가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그것을 받아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거리면서,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들을 부르시고 계신다. 우리는 어느 순간에서 하느님을 만나 응답을 하고 포도밭으로 갔는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일을 했는가? 사실 하느님께서는 포도밭에서 일한 일꾼들에 대해 순서를 따지며 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똑 같이 대해 주신 다는 것이다. 일을 하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면, 일한 대가를 어느 정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늦게 도착하여 한 시간 정도 일한 사람은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성심성의를 다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너무 고마워서…….
선한 포도밭 주인을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다면, 아마도 우리들의 삶도 고마워하면서 성심성의껏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한 일꾼은 누구인가? 먼저 와서 일을 하면서 타인과 비교를 하면서 자신은 더 큰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며 자신의 일에는 소홀 하는 사람들이다. 일의 보상이나 대가는 하느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지, 그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먼저 온 일꾼들이 나중에 온 사람들을 격려하며 함께 일을 했다면, 아마도 만족스러운 결과들을 공유했을 것이다.

 

2) 요한 1, 47-51절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나타나엘은 필립보를 만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초대에 응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타나엘에 대해 ‘거짓이 없는 자’라고 언급을 하시며, 그를 반긴다. 거짓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예수 그리스도 역시 그를 알아보신다. 서로가 알아보는데 무슨 긴 말이 필요한가? 다 알고 있는데…….
예수의 만남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가? 그냥 미래의 영원한 생명 그것은 너무 막연하다. 현세의 바람도 청하는 것이 우리들의 순수한 마음이 아닌가? 우리는 기도할 때 혹은 예수를 만나기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하고 갈망하는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말이 많지 않다고 한다. 그저 눈빛만 보아도 이해하고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성체 앞에서 그냥 바라보기만 하여도 기쁨이 가득할 때가 바로 그 순간이다. 앞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하고 다른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면, 행복과 기쁨은 우리들에게서 멀어질 것이다.

 

3) 마태 7, 31-34: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 무엇을 먹을까?’, ‘ 무엇을 마실까?’, ‘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지금 이 순간에 충만히 살아있는 것과 행복의 관계를 설명해 본다. 현재로 돌아가는 것은 생명과 만나는 일이다. 생명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발견할 수 있다.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행복, 깨달음, 평화, 기쁨, 행복은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만나고 발견할 수 있다. 생명과 만남은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난다. 우리의 약속 장소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다. 또한 혼란과 번잡함속에서, 상황이 어떻든 우리가 어떻게 응답하든 하느님의 뜻에 주의를 기울이며 따르는 거룩함에 이르는 길이며, 행복에 이르는 길이기도 하다. 란과 무질서 속에서도 거룩함에 이르려고 노력을 할 때 우리는 사랑스럽고 완전하며 거룩한 지혜를 만나게 된다.

거룩함과 신앙 그리고 행복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이 순간을 낙원으로 바꾸고 만들며, 천국 가까이 있다는 즐거움을 고양시킨다. 모든 순간의 행복은 하느님 때문에 드러나게 됨을 알기 때문이다. 이 행복을 느끼는 것이 신앙이다. 거룩함을 통해 신앙이 증진되고 그 결과로 행복한 것이다. 신앙은 어둠을 몰아내고 영원한 진리를 보게 하기 때문이다. 신앙의 으로 살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신심행위를 열심히 한다 해도 행복이나 거룩함을 발견할 수 없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현재의 삶에 충실하면서 살아가는 이유는, 그들에게 있어서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은, 지금 이 순간을 소홀히 여기지 않고 거룩하고, 중요하게 투신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모든 순간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피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우리를 지치고 싫증나게 하는 것들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랑하며 인내할 때 우리는 거룩함의 길을 따르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은 들면 성찬례에서 빵의 형상으로 존재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의 눈으로 알아보며, 그리고 하느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현존하심을 알아 성찬례를 평범하게 그리고 일상적인 예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행복은 지금 눈앞에 존재한다.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 행복에 대해서는 언급하거나 설명할 수가 없다. 천상의 삶도, 천상의 행복도 현세의 행복에 기준 되어야 할 것이다. 과거는 역사이며, 미래는 희망이다. 그리고 현재의 행복은 선물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현재의 행복을 바라신다. 미래의 영원한 행복은, 현재의 지속적인 행복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3. 청원기도

 기도를 할 때 주변의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기도하지 말자.
지 예수 그리스도와 만남만을 생각하고 그 분께 의존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종교적인 체험이고, 기도의 내용이다. 사실 모든 이들이 기도를 하지만, 붕어빵 공장에서 나오듯 같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자의 태도와 상태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온다. 틀에 맞춘 기도를 배우면 자유로운 사고나 상상 그리고 행동에 따른 판단을 타인과 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획일화된 제도나 틀에 들어가려고 한다. 리고 강요된 기도를 할 경우에는 스스로 생각하는 기도가 아닌 주문을 외울 위험이 있다.
자유로운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언제나 노력하고, 받은 기도의 열매에 대해 만족 수 있는 은총을 청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충분한(?) 대화를 통해 위로를 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특권이다. 그리스도와의 대화는 우리들의 나약함에 대한 위로다. 우리가 사랑을 받았고, 위로를 받았다는 것은 타인을 위해 헌신하고 삶의 의미를 갖는 열매임을 깨닫고 겸손함으로 결심한 것을 청해야 할 것이다.

 

 

4. 마침기도

그대

멀리서 들려오는 그대의 숨소리

거친 손과 힘없는 모습은

어두운 세상에서 빛이 되고자 자신을 태우는 작은 몸부림.

바램도 없고 포기함도 없는 당신의 열정 속에서,

메아리 없는 진실 된 소리를 세상에 외치며,

잔잔한 미소를 띄울 수 있음은

당신의 열정인가, 사랑인가.

 

우리들 모두가 세상의 빛이 되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에 살아 갈 것을 결심해 본다. 그리고 우리가 청하는 것을 조용히 주님께 말하면서 잠시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주의 기도와 성모송 그리고 영광송으로 마친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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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학균 신부의 “주님과 함께 하는 8일 산책”
1) 일곱째 날  :행복한 신앙생활과 예수 그리스도 만나기(1)  [바로가기]
2) 일곱째 날  :행복한 신앙생활과 예수 그리스도 만나기(2)  [현재 페이지]

조학균 신부 작성
1987년 예수회 입회,1995년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 신학부 졸업,1996년 사제서품,1998년 로마 안셀모 대학 전례학 석사,2003년 로마 안셀모 대학 전례학 박사,현재 대전가톨릭대학 전례학교수 및 영성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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