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째 날 -그리스도 안에서의 가정 공동체와 교회(1)

  현대 사회에서 가정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동체는 없다.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평화로운 휴식을 취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삶의 형태는 원시시대 때부터 남자가 들판에서 사냥을 하고, 여자는 동굴에서 자식을 돌보며 남자의 사냥 후 귀가를 기다리는 형태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사냥을 하고 돌아온 남자는 불길 앞에서 휴식을 취하고, 여자는 남자가 잡아온 동물을 잡아 음식을 만들고, 공동체가 함께 나누어 먹을 음식을 준비했을 것이다. 오늘날 생각으로는 아주 단순한 삶을 살아갔다고 하지만 그들 나름대로 많은 생각과 더불어 고민을 하고 살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가정 공동체에 대한 문제를 잘 이해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해결 하는 방법에 대해서 서툴다. 역사를 통해 가정을 구성하는 구성원은 변한 적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남편과 아내, 그리고 나아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녀. 이러한 구성을 갖게 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가정 공동체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특성을 갖고 있기에, 많은 시간 속에서 얻게 되는 그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도 각각의 문제점에 대한 정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각각의 가정공동체마다 어떤 경험과 이론도 적용하지 못하는, 즉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과 새로운 현실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르듯이 가정을 구성하는 모든 구성원이 다르면 새로운 공동체를 통해 새로운 특성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원은 교회와 함께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통해 증명되고 검증되며 확인이 된다. 교회와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특징 중에 하나는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기도나 행동 그리고 실천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타적이고 타인을 위한 공동체적이다.

 

가톨릭교회에서 말하고 있는 가정 공동체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은 “그리스도인 가정은 성장과정에 있는 인간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점진적 교육과 교리교육을 통해서 그를 인간적이고 그리스도적인 완전한 성숙에로 끌어 올리도록 부름 받은 첫 번째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삶을 영유해 가는 과정 속에 인간답게 생활을 하고 성숙해 질 수 있도록 가정 공동체에로 불림을 받았다”라고 재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가정공동체를 원한다면 구성원들은 자기 삶을 살아야 한다. 자기 삶이란 주체적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주체적인 삶이란 ‘생각도 자기 생각이어야 하고, 종교도 자기 종교여야 하고, 도 자기 말’이어야 한다. 남의 생각, 남의 종교, 남의 말로 주체적인 삶을 살수가 없다. 주체적인 삶이 아닌 것은 굴종의 삶이요, 노예의 삶이다.

 

 주체적인 삶이라는 것이 타인에 대한 배려를 무시하고 자기 이득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주체적인 생각을 갖고서 공동체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야 하는 방식이다. 공동체 삶을 살아가면서 구성원으로서 주체적인 의식으로 살아간다면 삶의 주체가 되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구성원이 근성으로 살아간다면 삶은 수동적이면 소극적이 된다. 즉 “의식”은 주인이자 주체가 갖는 생각이고, “근성”은 일꾼이자 하인인 객체가 갖는 의식이다. 도전하며 행복을 찾아 추구하는 “의식”은 자발적이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며 공동체를 생각한다. 안주하고자 하는 “근성”은 눈치를 보며 자신만을 생각하고 개인주의적 사고로 인해 이기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2. 성경구절

1) 골로 1, 24-29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당신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라고 나에게 주신 직무에 따라, 나는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 말씀은 과거의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입니다. 그런데 그 신비가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 나타난 이 신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려고, 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타이르고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이를 위하여 나는 내 안에서 힘차게 작용하는 그리스도의 기운을 받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함께 하는 삶이란 개인적인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이고, 그리스도적인 정의를 실천하려는 의지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받은 은총이나 능력은 다 공동체를 위한, 사도직을 위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능력은 경쟁이나 비교에 있지 않고 상호협력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며, 결과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표현되는 하느님의 은총이며 선물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영광이며 희망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신앙 표현이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것도 있다. 좋은 의도를 갖고 하더라도 피해를 주는 것이라면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살아가고 있는 삶이 나만을 위한 것이라면, 너무 슬픈 삶을 살 수가 있다. 지금이라도 공동체 의식을 갖고 타인의 위한 삶, 타인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행복은 바로 내 손안에 있다. 가족 공동체나 교회 공동체는 어찌 보면 동일시해서 해석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 모두가 다 나의 형제요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공동체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의미는 분명히 다르다. 영어에서 “I” 와 “We”의 차이를 설명할 때, 단수와 복수라고 설명한다. 언어에서는 두 단어의 차이점의 성격을 쉽게 찾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있어서 “I”강조하는 사람과 “We”강조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두 단어의 차이를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I”
자신의 특성을 강조하고 계발하여, 독특한 자신을 만든다. 개성이 강하고 좋은 점이 많다. 하지만 이기적이고, 비타협적인 면이 강조되면 접근하기 힘들다.

 

“We”
자신을 생각하기보다, 함께 라는 생각을 먼저 한다. 자신의 주장을 조심스럽게 주장하며, 모두를 위한 것에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기도 하며, 모든 이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개인적으로 능력이 출중한 제자들을 두었다기보다, 훌륭한 사도들의 공동체를 두었다고 말 할 수 있다. 사도 베드로를 중심으로 하는 사랑의 공동체, 서로의 공동체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에서는 이기심보다, 개인의 공명심보다, 모두를 위한 생각과 행동 그리고 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성격은 “I”에서 “We”를 향해 갈 때 성숙되어 가지만, “I” 와 “We”에서 “I”로 갈 때는 공동체는 분열하거나 독재체재로 들어간다. 하지만 각 개개인의 성격을 다 “We”라는 개념으로 바꾸라는 것은 아니다. 모두 다 “We”라는 개념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공동체는 개성도 그리고 각 개개인의 행복과 감동도 줄어든다. 사실 가장 좋은 개념은 “I with We 혹은 I in We” 라는 것이다. 함께 하고 그 안에서 나를 찾으라는 것이다. “줌”으로써 “얻을 수”있다는 개념은 그리스도적 개념이다. 사랑은 줌으로써 얻을 수 있으며, 줄 수 있다는 것은 갖고 있으며,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Nemo dat quod non habet(갖지 못한 자는 줄 수 없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나눌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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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학균 신부의 “주님과 함께 하는 8일 산책”
1) 여덟째 날 :그리스도 안에서의 가정 공동체와 교회(1) [현재 페이지]
2) 여덟째 날 :그리스도 안에서의 가정 공동체와 교회(2)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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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학균 신부 작성
1987년 예수회 입회,1995년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 신학부 졸업,1996년 사제서품,1998년 로마 안셀모 대학 전례학 석사,2003년 로마 안셀모 대학 전례학 박사,현재 대전가톨릭대학 전례학교수 및 영성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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