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째 날 -그리스도 안에서의 가정 공동체와 교회(2)

2) 마태 9, 9-13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그것을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기 위해 부르는 대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부르시는 사람에게는 당신이 갖고 있는 기준에 의해서 결정을 하시고 부르시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일은 너무나 단순하게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 불림을 받은 사람들은 불림 받은 자로서 생활을 하면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충실해 해 가는 것이 가정공동체를 이끌어 가고, 구성해 나가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 타인과 결코 비교해 가면서 공동체를 구성해 가면 불행이 시작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상태로 불림을 받은 것이다. 억울해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이 자리에 불림을 받았을 때는 그 만큼의 자격과 능력이 있어서 받은 것이다. 불림 받은 자의 태도는 결코 타인과 비교하는 삶을 살지 말아야 한다!

 

 

3) 요한 14, 23-29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삼위일체의 모범에 따르는 가정공동체는 서로의 역할이 존재하고, 존중하는 공동체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생활하고 살아가는데 힘들고, 경제적으로 힘이 드니까 가정 공동체와 가족의 일치에서 얻게 되는 사랑의 기쁨을 잊고 살기도 한다. 그리고 경제가 삶의 모든 것처럼 말하고 설명하고 있다 보니까, 가정의 가치관, 존엄성, 그리고 소중함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좌절과 불신 그리고 어둠의 길로 빠지고 있다면, 현실 생활은 아주 불행하게 느껴진다. 지난 60-70년대에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해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부족했던 시절이라서 그런지 단지 생활이 불편했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가치관이 있었고 삶의 가치사랑이 있었고, 의식이 있었다. 의식과 가치관을 잃어버렸다면, 다시 회복해야 하는 것은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앞서 정신적이고 영적인 가치관의 회복이 우선이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가정공동체의 모범이고 나아가 이루어야 할 목표인 것이다. 지금 가정에서 추구하는 것이 단지 경제적인 풍요로움이라면, 바로 수정하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메마른 마음에 따뜻한 가치와 사랑의 가족의식으로 가득 찬 사랑의 가족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3. 청원기도

참다운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성생활과 기도생활을 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해본다. 참다운 영성생활이란 성령과 함께 하는 삶이며, 성령의 이끄심에 응답하고 실천하는 삶을 말한다. 성령께서는 하느님과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시며, 하느님의 말을 듣게 해 주는 협조자 역할을 하신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지시를 듣고, 선택하고자 하지만 세상에서의 유혹이나 본능은 우리들을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마태,6.24)

 

복음에서 언급하고 있는 하느님과 재물과의 관계는 무엇인가? 두 주인 중에 재물은 무엇인가? 사실 두 주인은 “하느님나”라고 할 수 있다. 돈과 명예 그리고 기쁨이나 행복은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이 있어야 할 자리에 우리만 있다면 하느님은 들어오실 수 없다. 또한 하느님의 진리와 우리의 진리는 다르다. 하느님 진리의 잣대를 갖고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데,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의 잣대를 갖고서 생활을 하기에 주변의 사람들을 판단하고,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진리!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우리들의 진리는 무엇인가? 어떻게 그 진리를 배울 수 있는가? 그 진리를 배우기 위해 어떻게 생활을 하고 있는가?

 

진리를 알게 되면 자유를 맛보게 된다. 하지만 진리=자유는 아니다. 단지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 뿐이다. 진리를 발견하는 자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종종 진리에 대해 착각을 하며, 진리 아닌 진리라고 착각하는 것에 매달리는 경우가 있다. 오해나 순간적인 판단 실수에서 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항상 깨어있을 수 있도록 그리고 성령을 통해 진리를 배우고 나아가 하느님의 은총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도록 청해 보자. 진리를 아는 자는 현재에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에 충실하다(마태 6, 25-34).

 

4. 마침기도

인생

어둠이 내리어 세상을 덮는다.

적막과 고독은 세상을 지배한다.

세상 안에 있는 우리들은,

어둠의 자녀가 되어 어둠 속에서 더불어 살아간다.

정의와 평화의 이상을 망각한 채…..

 

기나긴 시간이 흘러 찾아온 아침.

지난날의 고통을 벗어버리고,

내일을 향한 힘찬 질주를 한다.

싱스러운 마음와 활기찬 의욕으로

정의와 평화를 건설 한다.

 

우리가 청하는 것을 조용히 주님께 말하면서 잠시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주의 기도와 성모송 그리고 영광송으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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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학균 신부의 “주님과 함께 하는 8일 산책”
1) 여덟째 날 :그리스도 안에서의 가정 공동체와 교회(1) [바로가기]
2) 여덟째 날 :그리스도 안에서의 가정 공동체와 교회(2) [현재 페이지]

*위 사진 출처-> Creative Commons License
This work is licensed under a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2.0 Generic License.

조학균 신부 작성
1987년 예수회 입회,1995년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 신학부 졸업,1996년 사제서품,1998년 로마 안셀모 대학 전례학 석사,2003년 로마 안셀모 대학 전례학 박사,현재 대전가톨릭대학 전례학교수 및 영성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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