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Ⅲ. 주일의 다른 이름

주일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하여 좋은 방법은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주일의 다른 이름을 추적하는 것이다. 그 이름들은 다음과 같다.

* 그리스도와 관련된 이름

‘주일’(Kyriakê êméra)은 묵시 1,10¹⁾외에도, 「디다케」 14,1과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의 「마그네시아인들에게 보낸 서간」(Ad Magnesios) 9,1에도 이미 명사로 바뀌어 나타난다. ‘주님의 날이란 표현은 예언자들이 선포하였고(이사 13,6-9; 요엘2,1-2참조)² 약 성이 예수님의 파스카에 적용한(마태21,42;사도4,11참조)³⁾훼의 ’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 표현은 ‘주님께서 만드신 날’(시편 118[117],24;말라3,17)⁴⁾암시한다. 째 의미는 신약성경에서 시편118(117)편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적용되면서 힘을 얻었다(마태21,42;사도4,11;1베드2,7-8참조)⁵⁾.

그리스도께서는 ‘주님과 메시아’(사도2,36)로 공경받으신다. ‘주님’이라는 호칭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다윗의 군으로 계신다는(시편 110[109],1;마태22,44참조)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표현하는 의미에서 하느님의 드님이시라는(마태16,16-17;로마1,4;1코린12,3참조)을 가리킨다.
‘주 예수님’이라는 호칭은 세례 신앙 고백(사도2,38;8,37;1코린5,4참조)과 신부인 교회가 신랑에게 하는 호송(묵시22,17.20참조)¹으로 나타난다.

 주일또한 ‘여러 날들 가운데 주인’이며, 시간에 관한 그리스도의 주권을 상징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알파요 오메가……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살아있는”(묵시1,8.18.19;참조:2,8;22,13)¹¹⁾분이시다. “주일은 거룩한 날이고 구원자를 기념하는 날이다. 주일이라 불리는 ‘여러 날들 가운데 주인’이기 때문이다. 사실 주님의 수난 이전에는 주일이라 부르지 않고 (주간)첫날이라 하였다. 에 주님께서는 세상 창조의 첫 열매를 이루어 주셨고, 또한 주일에 부활의 첫 열매를 세상에 주셨다. 그 열매들로 주일은 모든 좋은 것의 시작과 기원이 된다. 곧 세상 창조의 기원, 부활의 기원, 한 주간의 기원이 된다.”

————————————————————————————–
Tip !
1)묵시 1,10: 어느 주일에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내 뒤에서 나팔 소리처럼 울리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2)이사13,6-9: 슬피 울어라. 주님의 날이 다가왔다. 그것은 파멸과도 같은 것, 전능하신 분에게서 온다. 그래서 손이란 손은 모두 맥이 빠지고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녹아 내리며 불안에 떨리라. 그들은 경련과 고통에 사로잡히고 해산하는 여인처럼 몸부림치리라. 서로 넋 나간 듯 쳐다보는데 그들의 얼굴은 불처럼 달아오르리라.
보라, 주님의 날이 온다. 무자비한 그날이 진노한 격분과 함께 땅을 황폐하게 만들고 그 죄인들을 땅에서 절멸시키러 온다.
*요엘2,1-2: 너희는 시온에서 뿔 나팔을 불고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보를 울려라. 땅의 모든 주민이 떨게 하여라. 주님의 날이 다가온다. 정녕 그 날이 가까웠다. 어둠과 암흑의 날 구름과 먹구름의 날이다. 여명이 산등성이를 넘어 퍼지듯 수가 많고 힘센 민족이 다가온다. 이런 일은 옛날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세세 대대에 이르도록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
3)마태21,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있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사도4,11참조: 이 예수님께서는 ‘너희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 이십니다.
4)시편 118[117],24: 이날은 주님께서 만드신 날
우리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말라3,17: 그들은 나의 것이 되리라.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나서는 날에  그들은 나의 소유가 되리라.
부모가 자기들을 섬기는 자식을 아끼듯  나도 그들을 아끼리라.
5)1베드2,7-8: 그러므로 믿는 여러분에게는 이 돌이 값진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하는 그 돌이며,
또한
“차여 넘어지게 하는 돌과
걸려 비틀거리게 하는 바위”입니다.
그들은 정해진 대로,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그 돌에 차여 넘어집니다.
6)사도2,36: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안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
7)시편 110[109],1: 주님께서 내 주군께 하신 말씀.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마태22,44: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8)마태16,16-17: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로마1,4: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코린12,3: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일러둡니다. 하느님의 영어 힘입어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를 받아라.” 할 수 없고,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할 수 없습니다.
9)사도2,38: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 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사도8,37: 특히 2세기 이후의 서방 수사본들에는 ” ‘마음을 다하여 믿으시면 받을 수 있습니다.’ 하고 필리포스가 대답하자, ’나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하고 그가 말하였다.” 라는 37절이 있다.

*1코린5,4: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제 여러분과 나의 영이 우리 주 예수님의 권능을 가지고 함께 모일 때,
10)묵시22,17: 성령과 신부가  “오십시오.” 하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듣는 사람도 “오십시오.” 하고 말하여라.
목마른 사람은 오너라.
원하는 사람은 생명수를 거저 받아라.
*묵시22,20:
이 일들을 증언하시는 분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렇다, 내가 곧 간다.”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
11)묵시1,8.18.19; 참조:2,8; 22,13
*묵시1,8: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묵시1,18: 살아 있는 자다.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 나는 죽음과 저승의 열쇠를 쥐고 있다.
*묵시1,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일어나는 일들과 그 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기록하여라.
*묵시2,8: ”스미르나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죽었다가 살아난 이가 이렇게 말한다.
*묵시22,13: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

장신호 신부 작성
대구 출생(1966년). 교황청 성 안셀모 대학 전례학 석사(1996년 9월 ~ 1998년 8월) 학위 취득.사제수품(1998년 8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대구대교구 봉덕성당 보좌신부(1998년 9월 ~ 1999년 8월).교황청 성 안셀모 대학 전례학 박사(1999년 9월 ~ 2002년 2월) 학위 취득.대구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2002년 3월 ~ 2009년 8월).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전례서 편찬 담당(2009년 9월 ~ 2012년 현재).이메일janglitu@gmail.com

댓글 남기기

당신의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

학회 추천칼럼
이완희 신부

세상의 전례 (전례학 입문 4)

전례는 연극이 아니에요  얼마 전에 어떤 신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신부님, 왜 전례는 이렇게 재미가 없나요? 전례를 재미있게 꾸밀 수는 없나요?” 또 어떤 청년에게는 이런 말도 들었다. “젊은 전례, 열린 전례를 집전하기 위해서 우리 청년 모임에서는 청년들의 관심사로 말씀의 전례를 온통 꾸미고 중요 부분을 모두 청년의 구미에 맞게 바꿔서 미사를 드렸는데 참 좋았어요.” 이를테면 전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