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진성사는 그리스도교의 ‘성년식’인가요?

우리나라에서는 오월 셋째 주 월요일을 ‘성년의 날’로 지내고 있으며, 이날 만20세가 되는 젊은이들을 위해 성년식을 거행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끔 견진성사를 그리스도교에서 거행하는 영적인 성년식인양 설명하는 경우를 봅니다.
실제로 현행 교회법에 따르면, 어린 아이가 태어나 유아 세례를 받아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고(『한국천주교 사목 지침서』 제47조), 그 아이가 자라서 10세 전후가 되면 첫영성체를 하도록 하며(『한국천주교 사목 지침서』 제82조 2항), 더 지나서 만12세가 되면 견진성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한국천주교 사목 지침서』 제67조).
그래서 먼저 세례성사를 받아서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고, 후에 보다 자라서 이성을 갖추게 되면 견진성사를 받아 영적으로 굳건한 성인인 된다고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과연, 세례성사가 영적인 탄생의 성사인 반면에 견진성사는 영적인 어른이 되는 성사일까요? 그래서 견진성사는 본질적으로, 세례성사와는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서 따로 집전해야 하는 성사인 것일까요?

그리스도인이 되는 성사,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성자 그리스도를 통하여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 안에서 살아가는 성사‘그리스도교 입문성사’ 또는 간단히 ‘입교성사’라고 합니다.  견진성사가 그리스도교의 성년식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례성사만이 입교성사이며, 세례성사는 물로 이루어지는 성사인 반면에 견진성사는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성사라고 하지만 이러한 이해는 근본부터 잘못되었습니다.
우선 그리스도교의 세례는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그분과 함께 죽고 새로 태어나는 세례이고(로마 6,3-7), 주님의 세례는 요한의 세례처럼 물로 죄를 씻어 깨끗하게 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불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성사로서 초세기부터 사도들은 이점을 명확히 분별하고 있었습니다(루카 3,16; 사도 1,5; 18,25; 19,1-7).
그리고 입교성사가 그리스도인이 되어 하느님과 결합하게 하는 성사이므로, 입교성사 세례성사 한 가지가 아니라 가지 성사, 곧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를 한번 연속하여 받음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세례성사통해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고, 견진성사통해 성령의 은사를 받아  그 새로운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되고, 이어서 결국에는 성체성사통해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를 이루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부터 입교성사는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를 한번연속하여 집전하는 것이었으며, 이점은 3세기의 문헌인 『사도전승』에서부터 이미 확인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 문헌은, 세례성사 다음에 견진성사를 받아야만 평화의 인사를 나눌 수 있고 성체성사에 참여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세례성사가 물만이 아니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게 하는 성사인데 다시금 성령의 은사를 주는 견진성사를 받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4세기 경에 암브로시오 성인이 설명하기를, 인간이 물과 성령으로 하느님의 생명 안에 다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스스로는 그 새로운 생명을 유지할 능력이 없으므로 그 초월적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또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De sacramentis, 3,8). 세례만 받고 아직 견진을 받지 않은 사람은 태어나기만 하고 보살핌을 받지 못해서 아사할 위험에 놓여 있는 신생아와도 같으며,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세기부터 교회는 세례당에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나온 사람에게 흰 옷을 입혀 곧장, 성당 문 앞에 서 있는 주교에게 데리고 가 견진을 받게 한 후 성당 안에 들어가서 성체성사에 참여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사도전승』 제21장).

그러면, 입교성사인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를 오늘날처럼 각각 분리하여 따로 집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로마 교회의 신자수가 많아짐에 따라 입교성사의 집전도 많아졌으며, 입교성사에 주교가 불참하는 경우가 발생하였고 이때 세례 다음에 견진을 생략하고 성찬례로 넘어갔음을 7-12세기의 전례 원전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8세기 젤론의 젤라시오 성사집』은 입교성사에 주교가 불참하여 견진성사를 생략하는 일이 되도록 없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Liber sacramentorum Gellonensis, n. 712). 이렇게, 견진성사가 입교성사에서 분리된 원래의 이유는 입교성사의 많은 거행으로 인한 주교의 불참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12세기에 들어서면서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버립니다. 당시는 스콜라학파의 신학적 경향이 대세였는데, 이들은 모든 개념들을 이성을 통하여 정리하여 하였습니다. 성사를 받기 위해서도 인간은 이성을 갖추고 있어야 했었고 온전한 이성이 갖추어지기 전에는 성사를 받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세례도 견진도 영성체도 아직 명오가 열리지 않은 어린이들에게는 금지되었습니다.
다행이 어린이의 세례는 그 보호자의 신앙을 보고서 허용하였으나, 견진성사와 성체성사는 지역별로 연령의 하한선이 정해졌으며 그것이 지금까지도 그러합니다.
12세기 이전에는 단순히 주교가 입교성사에 불참한 것이 이유였지만 12세기 이후로는 이성의 사용 여부가 새로운 이유로 등장하였던 것입니다.
한편, 18세기에 들어서면서는 영성체 이후에 견진성사를 집전하는 관행마저 생겨나서 이제 입교성사는 각각 분리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순서마저도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기부터 12세기까지 천년이 넘도록 교회는 이성의 미비를 이유로 성사를 금지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젖을 떼지 않았고 말도 못하는 유아에게도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의 세 가지 입교성사를 모두 단번에 집전하였음을 3세기의 『사도전승』(제21장)에서부터 12세기의 『로마 주교예식서』(32,29.37)에 이르기까지 전례 원전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그렇게 한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 이성의 온전한 사용 여부라는 걸림돌을 넘어서서 모든 인간에게 도달한다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도전승』에 나타나는 초세기의 입교성사 전통을 복원하려 하여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를 한번에 연속하여 집전하도록 하였으며(『어른입교 예식서』 27-36항), 주교가 불가피한 사정으로 입교성사에 불참할 경우에는 신부에게 견진권을 위임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어른입교 예식서』 46항, 『견진성사 예식서』 7-8항).
그러나 이러한 공의회의 개혁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세 가지 있는데, 첫째 견진성사를 신비교육기간이 끝난 후로 미룰 수 있도록 한 것이고(『어른입교 예식서』 56항), 둘째 주교가 입교성사에 불참할 때에 사제에게 견진권을 위임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며, 셋째 이성에 대한 강조로 견진성사와 첫영성체를 할 수 있는 연령이 교회법으로 여전히 제한되어 있어서 어린이의 입교성사는 세 가지 성사가 아직도 분리되어 있고 그 순서도 뒤바뀌어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입교성사에 관한 한 공의회의 개혁은 그 본질을 강조하는 데에서 그치고 있는 실정이며, 그 본질이 현실적으로 드러날 수 있기 위해서는 예식과 규정을 더욱 다듬고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전례학회는 한국천주교의 교도권을 우선 중시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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