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 cum spiritu tuo.”

미사 중에 주례 사제와 백성은 다음과 같은 대화를 여러 차례 주고 받습니다:

╋ Dominus vobiscum.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Et cum spiritu tuo. / 또한 사제와 함께.

이것은 ‘안녕하세요?’ 처럼 통상적 안부를 묻는 일상적인 인사말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현존하심을 서로 확인하는 매우 중요한 ‘전례 대화’(dialogus liturgicus)입니다.
그래서 이 전례 대화는 미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시작될 때마다 반복하도록 되어 있는데, 모두 다섯 군데로서, 시작 예식에서 주례사제와 백성이 처음으로 대화할 때, 마침 예식에서 파견 강복 직전에, 말씀 전례에서 복음 선포 직전에, 성찬 전례에서 감사기도를 시작할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성체 직전에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입니다.

 서로 주님의 현존을 확인하는 이 인사는 성경에서 자주 발견되며, 그것이 현재와 같은 정확한 표현으로 그리스도교의 전례 안으로 들어온 것은 이미 3세기의 문헌인 「사도 전승」(Traditio Apostolica)에서부터 발견됩니다(「사도 전승」 4장; 25장).
따라서 이 전례 대화는 초세기부터 시작하여 오랜 세월 동안 교회의 전통으로 물려받은 고귀한 유산인 것입니다. 경신성사성에서 2001년에 반포한 “로마 전례서 발행에서의 모국어 사용에 관한 훈령”인 「진정한 전례」(Liturgiam authenticam) 56항에는, 이렇게 고대의 전례 전통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에 해당하는 전례문을 모국어로 번역할 때에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되도록 직역함으로써 그 표현을 존중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지침이 나온 이유는 고귀한 교회 전통을 존중하려는 것이며, 이것을 자연스러운 현대의 표현으로 의역하여 어느 하나로 고정하면 오히려 오랜 세월 동안 그 안에 쌓여온 깊은 의미가 간과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미사통상문에는 “Et cum spiritu tuo.”가 “또한 사제와 함께.”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은 직역이 아닌 의역이고 직역은 ‘또한 당신의 영과 함께.’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물어보아야 할 것은, 첫째, 왜 이렇게 의역을 하였는가 하는 점과, 둘째, 이 의역은 합당한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말에서는 2인칭 대명사를 존대의 의미로 사용하는 법이 없으며, 대신 직함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에 따라 ‘또한 당신의 영과 함께’는 ‘또한 사제(부제)의 영과 함께’로 번역하는 것이 우리말 어법에 맞습니다.
그런데, J.A. Jungmann, G. Duffrer 같은 전례학자들은, 여기에 나오는 ‘영’(spiritus)이라는 말이 성경의 관습을 반영하는 것이며, 한 사람의 영혼을 가리키는 것이고, 셈족 어법에서 ‘한 사람의 영혼’이라는 표현은 ‘그 사람의 개인적인 차원’을 가리키는 일상적인 표현이므로, 결국 “Et cum spiritu tuo.”는 그냥 ‘또한 당신과 함께.’ 정도의 의미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말 미사통상문에서는 이를 단순히 “또한 사제(부제)와 함께.”로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에 따른 번역을 채택한 것은 우리말 미사통상문만이 아니라 영어 미사경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전례학자들이 이러한 해석이 ‘영’이라는 말을 부당하게 축소하여 해석한 것이라고 하면서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여기서 ‘영’이라는 말이 단순히 사제의 영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사제의 품위를 받도록 서품식 때 그에게 성령의 “은총으로 내려진 은사”(charisma gratia data)’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전례문으로서 “Dominus vobiscum. – Et cum spiritu tuo.” 라는 표현이 가장 먼저 발견되는 「사도 전승」 4장의 상황은 바로 서품식 직후의 성찬례입니다.
그리고 Theodorus Mopsuestenus(Homilia catechetica XV,37-38), Ioannes Chrysostomus(PG 60, 402; PG 61, 123), Theodoretus Cyrrhi(PG 82, 56.261C) 같은 교부들 역시 “Et cum spiritu tuo.”의 ‘spiritus’가 단순히 사제의 영혼이 아니라 그가 서품식 때 성령을 통해 받은 직무수행의 은사를 가리키는 것이며, 사제가 자신의 영으로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서품식 때 받은 성령의 은사로 주님의 뜻에 따라 자신의 직무를 수행함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THEODORUS MOPSUESTENUS, Homilia catechetica, XV,37-38; IOANNES CHRYSOSTOMUS, Homilia in epistola Pauli ad Romanos 1,9 (PG 60, 402); Homilia in epistola I Pauli ad Corinthios 5,4 (PG 61, 123); THEODORETUS CYRRHI, Commentaria super epistolam Pauli ad Romanos 1,9 (PG 82, 56); Commentaria super epistolam I Pauli ad Corinthios 5,4 (PG 82, 261C).
특히 Theodoretus는 “Spiritum autem hic non animam vocat, sed gratiam.”(여기서 ‘영’이라는 말은 영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은총을 가리킨다.)[PG 82, 256C]이라고 명백하게 단언하였습니다.
이 경우에, ‘spiritus’라는 말은 서품된 성직자의 직무와 관련하여 그 은사를 가리키며 한정적으로 사용됩니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Et cum spiritu tuo.”는 ‘주님께서 사제와 함께.’가 아나라 ‘주님께서 현존하시어 성령의 은총으로 사제 직무 수행의 은사가 효력을 발하게 해 주소서.’ 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말 번역인 “또한 사제와 함께”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하는 ‘축소 해석’에 따른 의역으로서 교회 전통 안에서 이루어진 깊은 해석을 모두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며, 그래서 최근 교도권의 지침인 「진정한 전례」 56항에도 정면으로 위배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사제와 함께.”가 ‘당신과 함께.’라는 표현과는 달리 ‘사제 직무 수행의 은사를 받은 사제의 영과 함께’라는 뜻으로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겠습니다만, 대다수의 신자들은 “사제와 함께”라고 말하면서 ‘당신과 함께’라는 뜻으로 자연스레 단정해 버린다는 것이 여전히 문제로 남습니다. 애초에 이렇게 의역한 이유 중에 하나가 그러하듯이, 우리말 어법에서 2인칭 대명사 대신 직함을 존칭으로 사용하는 현상이 “사제와 함께”를 축소된 의역으로 만들어버리는 주된 이유라는 엄연한 사실을 회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결국 “Et cum spiritu tuo.”는 다소 생소한 표현인 “또한 사제(부제)의 영과 함께”로 직역함으로써, 신자들로 하여금, 그것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자연스러운 표현이 아니라 교회의 오랜 전통에서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이어서 그 뜻을 배워 익혀야 하는 것임을 알게 함이 합당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전례」 56항의 지침이 의도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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