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사에 참석해야 하는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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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부활로써 그 정점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15항)에 참여하는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예수 부활 대축일 본기도에는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 주신” 하느님의 외아드님에 대하여 언급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409항에서 말하는 것처럼 “성찬례는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기념한다.

곧,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로 완성된 구원 사업에 대한 기념인 것이다.

 

이 구원 사업은 전례 행위로 현재화한다”. 전례 행위 즉 미사로써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며, 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다는 것은 “사랑으로 창조되고 성자의 피로써 구원되고 성령으로 새로남”(부활 제2주일 본기도 참조)을 의미한다. 또한 ‘영혼이 새롭게 되어 그분의 자녀됨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부활 제3주일 본기도 참조). 이 기쁨은 “끝없는 기쁨”(부활 제4주일 본기도 참조) 으로, 세례성사로 그분의 자녀가 된 이들이 얻게 되는 “참된 자유와 영원한 유산을”(부활 제5주일 본기도 참조) 말한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우리들은 “성덕에 대한 모든 노력, 교회 사명의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활동, 모든 사목 계획에 필요한 힘은 성체성사의 신비에서 이끌어 내야하며, 또한 그 정점인 신비를 지향”(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60항) 하여야 할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이 지극히 거룩한 성사와 깊은 관계를 맺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들을 이 거룩한 성사로 이끌 수 있다”고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53항) 교회가 증명하듯이, 우리도 주님의 기쁜 부활안에서 맞이하고 지내게 되는 성모성월에 “온 생애를 통하여 ‘성체성사의 여인’이셨던”(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53항) 성모님께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시도록 기도하자.

6월 첫째 주일은 부활 시기의 막을 내리는 성령강림 대축일이다. 이날 교회는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내리심으로써 교회가 세워지고 모든 나라와 민족에 대한 교회의 선교가 시작되었음을 기념한다(사도 2,1-4참조). 이렇게 선포된 복음을 통하여 신자들은 세례 성사를 받으며, 이 성사를 통하여 그들의 몸은 존중받고 영광 받으셔야 할 성령의 성전이 된다. “신자들 속에 사시는 성령의 근본과업은 그들을 거룩하게 만드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 182쪽). 이 성령의 역할로 성령의 성전이 된 그리스도인은 성찬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더욱 하나가 된다. 왜냐하면 “교회의 기원이며 교회를 굳건히 하고 지속적으로 살아 있게 하는 성자와 성령의 나뉠 수 없는 일치 운동은 성찬례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23항).뿐만 아니라 신자들은 “영성체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그분의 성령을 받아 모심으로써 인간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힌 형제적 일치에 대한 염원이 충만히 실현되는 동시에, 같은 성찬의 식탁에 동참함으로써 느끼는 형제애가 더욱 고양되어, 단순히 음식을 나눌 때 경험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친교를 경험하게 된다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24항).

성 바오로 사도는 그 누구보다도 그리스도와의 이 일치를 체험하신 분이다(갈라 2,20참조).

우리 모두가 예수 성심의 뜨거운 사랑을 배우고 나누도록 성 바오로 사도께 전구하자.

그분과 친교를 이루는 성령의 성전인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령의 성전’인 우리는 그분의 사랑에 부합하는 끊임없는 성장을 하여야 하며, 스스로를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장소로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전체성 안에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인간이 되셨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그분의 구원 사업에 참여하여야 한다. 그러나 급변하는 사회적, 윤리적 변화 그리고 가장 성스러운 가치들의 붕괴 속에서 우리는 혼란과 갈등을 겪게 된다.

‘그리스도를 따름’은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신에서 드러나도록(2코린 4,11)” 죽고 부활하여 새로운 생명을 입게 될 맑고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인데 우리 자연 본성의 힘은 여기에 도달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는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분의 사랑에 응답하여야 하는 데 우리의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리 잡고 있던 우리의 생각, 관습으론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례 성사로 ‘우리 안에 탄생하신 하느님’의 삶의 방법은 우리 삶의 방법과 다르기 때문이다(로마 6,10 참조). 일상 안에서 우리는 잊고 싶은 것도 많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 그리고 잊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이 있다.

 

이 글의 원문은 http://sisterspd.org -전례자료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주님, 당신만으로 충분합니다!
(초대총장 마드레 마리아 스콜라스티카)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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