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라는 말에는 세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파스카 신비

 파스카 신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우리 교회 안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표현 중의 하나가 바로 ‘파스카의 신비’입니다. 특히 이 말은 사순시기와 부활시기의 전례 안에서 더 자주 언급됩니다. 왜냐하면 파스카의 신비는 성사, 특히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전례에서는 예수님의 수난, 죽음, 부활, 승천을 별개의 사건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컸습니다. 하지만 공의회 이후에는 예수님의 수난-죽음-부활-승천을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수난-죽음-부활-승천을 통한 구원 역사(役事)파스카의 신비라고 일컫고 오늘날 더욱 강조하게 된 것입니다.

 

‘파스카’라는 말은 유다인들의 축제인 과월절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해방되어 나올 때, 이집트의 맏자식들은 하느님의 천사에 의해 모두 죽었지만,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써 죽음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고 하느님께 감사드린 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월절 축제였습니다.

이것이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예수님을 통한 인류의 구원사건으로 이어졌고, 자신을 희생하여 생명을 가져다주신 예수님은 새로운 파스카 어린양이 되신 것입니다.

 

‘신비’라는 말에는 세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선 성서에서는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 계획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한때 인간이 전혀 알 수 없었던 하느님의 비밀이었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진 신비입니다.

두 번째로 신학에서는 우리가 아무리 이치를 따져도 도저히 깨달을 수 없는 진리를 신비라고 합니다.

끝으로 전례에서는 성사를 통하여 활동하시는 그리스도의 은총과 그 열매를 뜻합니다.

파스카의 신비는 하느님께서 당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죄의 멸망에서 구원하신, 인간 이성으로는 도저히 깨달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모든 신비가 그렇듯이 파스카의 신비도 오로지 믿음과 신뢰심으로만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파스카의 신비를 통하여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내비게이션’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선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의 삶이 영원한 영광과 행복을 향하여 방향 지어져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하여 창조되었고 영원히 행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한편 우리가 파스카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잊지 말아야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시기 위하여 하느님의 뜻에 따라 고난을 받고 죽으셔야 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고통과 죽음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환영하는 사람은 없지만 인생이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고통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고통은 반드시 끝이 있는 법이지요.

 

파스카의 신비는 바로 사랑의 신비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양편으로 활짝 열려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인간과 세상에로⋯ . 하느님 아버지께 열린 사랑은 수난과 죽음까지 감사하게 받아들이신 절대 순명으로, 우리 인간에게 열린 사랑은 온갖 조롱과 증오와 업신여김을 죽는 순간까지 받아들이신 관용으로 나타납니다.

살아가다보면 가지가지의 폭풍과 거센 파도가 일어나 우리의 진로를 방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가시는 파스카 양이시며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꾸준히 나아간다면 그 무엇도 우리를 막아서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신 평화와 행복의 항구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로 저희를 구원하신 주님, 길이 영광 받으소서!”(신앙의 신비여! 제3양식)

 

 

 

[이 글은 '파스카 신비'란 제목으로 2006년4월에 나무그늘에 연재되었습니다.] 
 
 
 
 
 
 

One Response to ‘신비’라는 말에는 세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파스카 신비

  1. 아멘~ 꾸준히 나아가겠습니다^^

    도미니카사랑
    도미니카사랑 2012년 1월 23일 at 8:52 pm 응답

댓글 남기기

당신의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

학회 추천칼럼
이완희 신부

세상의 전례 (전례학 입문 4)

전례는 연극이 아니에요  얼마 전에 어떤 신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신부님, 왜 전례는 이렇게 재미가 없나요? 전례를 재미있게 꾸밀 수는 없나요?” 또 어떤 청년에게는 이런 말도 들었다. “젊은 전례, 열린 전례를 집전하기 위해서 우리 청년 모임에서는 청년들의 관심사로 말씀의 전례를 온통 꾸미고 중요 부분을 모두 청년의 구미에 맞게 바꿔서 미사를 드렸는데 참 좋았어요.” 이를테면 전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