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도 ‘다시’ 하셨다!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2-26

그때에 22 예수님과 제자들은 벳사이다로 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23 그분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24 그는 앞을 쳐다보며,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 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5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말씀하셨다.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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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예수님

오늘 장님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사실 놀랐다.

다른 치유의 기적들은 ‘즉시’ 혹은 ‘하자마자’ 이런 부사가 사용될 만큼 한 번에 신속하고 완벽한 치유가 일어났지만 이번 치유는 두 번에 걸쳐 점진적으로 행하여졌다.

나는 몇 년동안 그저 이러한 치유에 대해 다소 의문점이 생겼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나의 내면에서는 그 의문점이 어떤 깊은 가르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 해답을 찾았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내 자신의 그릇된 사고방식을 깨달았다.

하느님이신 예수님! 전능하신 그분도 무엇을 ‘다시’ 하시는 스타일이구나!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 있어서 ‘다시’는 단지 실패한 결과에 대한 재도전의 의미이기 보다,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살아가신 자연스런 성공의 방식인 것이다.

부활(復活)은 어려운 단어가 아니라 ‘다시살다’라는 뜻 아닌가?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기기’ 전에 이미 ‘다시 행하는’ 삶을 살았다.

치유의 방식, 목표를 이루는 과정, 기도하는 여정 등의 모든 인생여정에서 ‘다시’는 매우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삶의 과정이자 방법이다.

성실한 사람의 삶속에는 남이 따라올 수 없는 재능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그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덕이 있다.

지금 나에게 역시 ‘다시’ 할 수 있는 가벼운 마음이다.

 

허윤석 신부 작성
네이버나 다음의 검색창에 "회복의 시간"을 치면 허윤석신부님의 홈페이지가 나온다. 오랜시간동안 신자들을 위한 힐링피정과 힐링음악 그리고 잔잔한 단상과 묵상이 풍성히 있는 이곳으로 초대한다. 강론은 사제의 가장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현재 성모기사회 잡지에 "곰곰히"라는 코너를 그리고 가톨릭 신문에 전례잠짜를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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