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중기와 후기의 장례예식

중세 중기와 후기의 장례예식

 

중세 중기에 이르러 죽음에 있어서의 속죄와 참회의 측면을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경향은 교회에 속죄와 참회의 신학의 발달을 불러일으켰고 장례예식에 커다란 변화를 주는 동기가 된다.  이제 하느님의 심판 때에 징벌을 피하기 위해 하느님의 자비에 호소하는 쪽으로 장례예식의 성격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장례미사는 망자의 영혼을 위한 속죄의 수단으로 집전되기 시작하였고 장례예식 안에서도 파스카의 기쁨은 망자의 영혼의 죄를 씻는 속죄적인 성격으로 대체되고 말았다. 이러한 속죄의 정신은 죄로 인한 심판의 두려움을 불러 일으켰고 결국 죽음 앞에서 파스카적인 기쁨보다는 심판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느껴야하는 종교심의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속죄와 참회의 강조로 인하여 장례예식 안에서 기쁨을 표명하던 파스카적인 요소는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는데, 특히 8세기 이후 갈리아 지방의 전례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러한 파스카적 요소의 감퇴는 중세의 모든 지방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교회가 세속적이고 외적인 성장을 거듭하면서 기득권을 갖게될 때 교회는 보수화 되고 안정을 추구하게 된다. 이 안정과 기득권을 한꺼번에 상실하게 되는 것이 죽음이라고 한다면 결국 죽음은 파스카적인 기쁨이나 즐거움의 표상이라기보다는 심판과 재앙의 표상으로 이해되기가 더 쉬었을 것이다. 결국 이는 장례 전례에도 영향을 강하게 미침으로써 초대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전례를 퇴색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러한 파스카적 요소의 감소에 따라 그레고리오 성사집과 그 동시대의 장례 기도문에 새로이 등장하는 요소들은 다양하다. 우선 살아있을 때 범한 죄에 대한 근심으로부터 기인하는 사죄경의 성격을 띈 기도문이 나타난다(Ut absoluta omnium vinculo peccatorum Gre.1400). 또한 죽음은 더 이상 저 세상을 향하는 통과의 기쁨이 아니라 두려운 심판(Non intres in iudicio… non ergo eum tua quaesumus iudicialis sententia praemat… Gre 1401)이며 이러한 심판을 통하여 지옥의 불길(ignis flammaque tartaris RH 1332)로 빠지게 될지 모르는 위험한 여행처럼 묘사된다. 따라서 죽은 후에 다가올 저승에 대한 개념도 부정적인 언어로 묘사된다. 이 예식에서는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판의 형벌을 피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자비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아직 심판 중에 있는 망자의 영혼을 위한 끊임없는 기도는 이 예식서의 중심을 차지한다. 미사성제는 이러한 기도 중에서 가장 효력 있는 기도로 여겨져 봉헌되었으며, 모든 장례식의 기도문들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지엄하신 하느님(Deus)을 향해 바쳐졌다. 성자와 성령이라는 명칭은 이 시대의 장례 예식서에서 찾아보기가 힘들게 되었으며 파스카 사건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경륜에 대해서도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장례 예식서들의 기도문에서 그리스도론적인 진술이나 파스카적인 진술은 매우 드물게 발견된다.

멘데의 주교였던 G, Durandus(1230-1296)는 클뤼니 수도회의 장례예식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이 자료에서 우리는 임종 직전에서부터 매장 때까지의 장례예절을 살펴볼 수 있다. 이에 의하면 먼저 임종이 가까이 온 것을 느낀 수도자는 아빠스나 원장신부를 불러 임종에 대해서 알린다. 이어서 공적인 죄의 고백과 병자의 도유, 노자성체가 시편이 불려지는 가운데 집전된다. 임종이 가까워지면 그에게 재를 뿌린다. 그리고 성인호칭기도가 뒤따르는데 후렴은 <그를 위하여 빌어주소서(Ora pre eo)>라고 변형되어 노래된다. 임종 후에 바로 위령 성무일도가 성당에서 거행된다. 성무일도는 저녁기도에서 아침기도까지 계속 되는데 이 성무일도가 끝나면 미사가 이어지고 미사 후에 곧 바로 묘지까지 행렬하여 시신을 매장한다.

이 예식에서 볼 수 있듯이, 죄를 고백하고 재를 뿌리며 망자를 위한 호칭기도를 하는 것은 망자의 속죄와 죽은 후의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 강조되었기에 생겨난 전례 형태로 보인다. 여기서 재를 뿌리는 부분은 구약성서의 재앙에 대한 기사들을 떠올리게 하는데 죽음이 파스카의 여행이라기 보다는 재앙의 성격에 가깝게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이 때 바쳐지는 위령 성무일도가 성삼일의 성무일도와 비슷한 구조로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이 성무일도 역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의 위로를 중심테마로 삼고 있으며 파스카적인 기쁨의 테마는 거기서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이 수도원 전승의 장례예절은 그 골격이 1614년 로마 예식서의 장례예절에 수용되게 된다. 결론적으로 이 시대의 장례예절에서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기억은 인간의 속죄에 대한 염려로 뒤바뀌기 시작했다고 하겠다.

 

이완희 신부 [파스카로 가는 길 - 장례미사에 대한 소고]
 
 ( To be continued…. )
 
 
 
 
 
 

 

 

이완희 신부 작성
*주요경력* 1987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사제서품1987-1989 부평4동, 제물포, 주안5동 보좌신부/ 1989-1995 로마유학 (성안셀모대학교, 전례학)/ 1996-1999 인천교구 양곡주임/ 1999-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사목부장, 도서관장, 전산실장,영성부장, 사무처장, 교무처장, 대학원장 역임)/ 2000-현재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 2006-2009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인천교구 만수1동성당 주임신부/ 주교회의 성음악소위원회 총무/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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