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iple[영] 수대 手帶 Manipel[독] Manipulus[라]

 

[수대에 관하여 질문하신 분께 답변 드립니다. 이글은 수대의 역사에 관한 내용입니다. 수대의 용도와 영성적 의미에 관한 글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http://liturgia.kr/?p=6876  ]

 

[요약]

수대는 로마 제국에서 차려입은 정장의 손수건에서 유래한 것으로, 지금은 폐지된 차부제의 표지였으며, 작은 영대 모양으로 왼쪽 손목에 걸었으며, 미사 전례에서 사용하였었다. 현재는 로마 전례의 “예외적 양식”(forma extraordinaria, 아래 참조)의 전례 복장으로 인정된다.

사실 수대는 1967년 5월 4일 ‘전례 헌장’의 올바른 실천을 위한 둘째 훈령 ‘3년 전’(Tres Abhinc Annos)로 의무적이 아닌 선택적인 요소로 바뀌었다.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로마 미사 경본(1970년 이후, 현행 2008년까지)에서는 더 이상 수대에 관하여 언급하지 않는다. 그것은 수대가 차부제의 표지이지만, 차부제품은 1972년 8월 15일 바오로 6세 교황의 자의 교서 ‘라틴교회의 삭발례와 소품과 차부제품에 관한 규율’(Ministeria quaedam)로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7년 7월 7일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1970년 전례 개혁 이전의 로마 전례 사용에 관한 자의 교서「교황들」(Summorum Pontificum)에 따라 폭넓게 허용된 “예외적 형태의 라틴 예법 미사 전례를 복자 요한 23세 교황이 1962년에 발행한 트리엔트 미사 경본에 따라 거행하는 경우”에는 수대를 사용한다.

% 로마 전례의 예외적 양식(forma extraordinaria)은 정규 양식(forma ordinaria)에 대조되는 내용이다. 이해하기 쉽게 단순하게 말하면, 정규 양식(일반 양식, 보통 양식)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개혁에 따른 ‘로마 미사 경본’(1970년, 1975년, 2002년, 2008년)과 개정된 예식서들에 따라 라틴말 또는 모국어로 거행하는  전례이며, 예외적 양식(비정규 양식, 특별 양식, 특수 양식)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개혁 이전의 ‘로마 미사 경본’(1962년)과 개정 전 예식서들에 따라 라틴말과 모국어(독서는 모국어로 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음)에 따라 거행하는 전례이다.

[역사]

수대는 로마인들의 풍속에서 유래한 것으로 집정관과 국가의 고위 관직에 있는 이들이 정장으로 차려입을 때 에티켓의 목적으로 지녔던 손수건 또는 수건을 모방한 것이다. 수대는 손에 지니거나 의복에 부착하였다.   

‘교황들의 책’(Liber Pontificalis)은, 수대가 영예로운 표지이며, 실베스테르 교황(+ 314년)이 전례 예식에서 로마의 부제들에게 수여하였다고 전한다. 수대는 양모나 비단 등 고급 직물로 만들었다. 아마도 영예의 표지로 수여받아, 일반적으로 잘 쓰지 않는 왼손으로 잡았다.

6세기말까지는 수대가 로마 성직자들의 특권으로 유보되었으며,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라벤나의 요청에 대하여, 오로지 라벤나 주교좌의 수석 부제만 수대를 사용하도록 허락하였다. 그 당시에 수대는 왼손에 들고 다녔으며 손목에 걸치지 않았다. 그러한 사용법은 1100년 이후까지 오래도록 유지되었다.

그리하여 로마의 성 클레멘스 대성당의 프레스코 벽화에서(11세기), 성인은 수대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서 잡고 있다. 로마 예식 제10번(OR X)은 차부제가 수대를 왼손으로 잡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나중에 12-13세기에 이르러서야 수대를 왼쪽 손목에 걸치기 시작한다. 한편 이즈음 주교를 위한 다른 관습이 도입되어, 주교는 고백의 기도(전능하신 하느님과…; Confiteor)를 마치고 수대를 제대 위에 올려 놓았다. 이러한 내용은 기욤 뒤랑(굴리엘모 두란도)이 13세기 문헌에 기록하였다.

수대의 모양은 적어도 9세기 또는 그 이후까지도 손수건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그 당시 메츠의 아말라리오는 수대를 거룩한 용도의 Sudarium(1. 땀 닦는 수건 또는 2. 죽은 이를 염할 때 덮는 천 또는 3. 그리스도의 얼굴이 남아 있는 베로니카의 수건)으로 묘사하고 있다.

13세기의 카말돌리 은수 수도회 미사 통상문에는 아직도 수대가 초기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곧 “봉헌송을 노래할 때 부제는 차부제에게 성반을 건네고, 차부제는 성반을 수대로 받아 잡고 주님의 기도를 마칠 때까지 들고 있는다.”고 규정하였다. 이어서 수대는 조금씩 그 폭이 좁아지고 그 길이는 길어졌으며, 양 끝 부분에 술 장식을 달았고, 이따금 방울도 달았으며, 더나가 금실로 수 장식도 하였다. 그리하여 짧은 영대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십자가 장식은 중세 시대에는 드물었으며, 나중에 미사 경본의 규정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의무 사항이 아니었다. 수대를 사용할 권리는 대품(차부제품 이상)에 서품된 이들 미사 거행에서만 사용하였다.

로마 예식 제8번은 또한 시종들도 수대를 사용하도록 허용하고 있지만, 시종들은 수대를 차부제들처럼 손에 걸치지 못하고 왼쪽 허리춤에 띠에 걸도록 하였다. 한편 클뤼니 수도원과 같은 프랑스 지역의 일부 수도원은, 평수사를 포함한 모든 수사들이 가대(coro)에서 장백의를 입고 수대를 사용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남용은 푸아티에(Poitiers) 교회 회의(1100년)에서 폐지되었으며, 수대는 적어도 차부제품을 받은 수사들만 사용하도록 결정되었다.

최근의 변화에 대하여 앞에서 요약한 것을 다시 반복하면, 수대의 사용은 1967년 5월 4일 ‘전례 헌장’의 올바른 실천을 위한 둘째 훈령 ‘3년 전’(Tres Abhinc Annos)로 의무적이 아닌 선택적인 요소로 바뀌었다. 그 이전에는 주로 차부제 이상 성직자의 표지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로마 미사 경본(1970년 이후, 현행 2008년까지)에서는 더 이상 수대에 관하여 언급하지 않는다. 그것은 수대가 차부제의 표지이지만, 차부제품은 1972년 8월 15일 바오로 6세 교황의 자의 교서 ‘라틴교회의 삭발례와 소품과 차부제품에 관한 규율’(Ministeria quaedam)로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7년 7월 7일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1970년 전례 개혁 이전의 로마 전례 사용에 관한 자의 교서「교황들」(Summorum Pontificum)에 따라 폭넓게 허용된 “예외적 라틴 예법의 미사 전례를 복자 요한 23세 교황이 1962년에 발행한 트리엔트 미사 경본에 따라 거행하는 경우”에는 수대를 사용한다.

[수대에 관하여 질문하신 것에 대한 답변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강복을 빌면서, 2012년 2월 29일 장신호 신부 드립니다.]

참고자료: Mario Righetti, Storia Liturgica, I권, p. 618-621 참조.

참고 사진(위키피디아) 바로가기: http://pt.wikipedia.org/wiki/Man%C3%ADpulo

 

 

장신호 신부 작성
대구 출생(1966년). 교황청 성 안셀모 대학 전례학 석사(1996년 9월 ~ 1998년 8월) 학위 취득.사제수품(1998년 8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대구대교구 봉덕성당 보좌신부(1998년 9월 ~ 1999년 8월).교황청 성 안셀모 대학 전례학 박사(1999년 9월 ~ 2002년 2월) 학위 취득.대구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2002년 3월 ~ 2009년 8월).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전례서 편찬 담당(2009년 9월 ~ 2012년 현재).이메일janglit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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