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대(手帶)의 용도와 영성적 의미

[수대의 역사에 관한 글에 덧붙여, ‘수대의 용도와 영성적 의미’에 관하여 답변 드립니다. 수대의 역사에 관한 글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http://liturgia.kr/?p=6543  ]

 

[수대의 용도]

1. 수대는 (지금은 폐지된) 차부제의 표지였다. 차부제로 서품되는 이는 서품 예식 도중에 수대를 받았으며, 부제품, 사제품, 주교품을 받고 계속해서 사용하도록 되어 있었다. (예전에) 차부제부터 수대를 사용하였으므로, 차부제의 신분을 상징하는 표지가 된 것이다. 부제는 수대와 함께 부제 영대를 하였고, 사제는 수대와 사제 영대 위에 제의를 갖추어 입었다.

2. 수대의 기원은 로마 제국의 정장에 지참하는 손수건이었으므로, 수대의 원래 용도는 얼굴의 땀과 눈물을 닦기 위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3. 수대가 적어도 9세기 또는 그 이후까지도 손수건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메츠의 아말라리오(+814년)는 수대를 거룩한 용도의 Sudarium(1. 땀 닦는 수건 또는 2. 죽은 이를 염할 때 덮는 천 또는 3. 그리스도의 얼굴이 남아 있는 베로니카의 수건)으로 묘사하고 있다. [참고자료: Mario Righetti, Storia Liturgica, I권, p. 618-621 참조]

4. 12-13세기에 이르러 수대를 왼쪽 손목에 걸치기 시작한다. 이즈음 주교를 위한 다른 관습이 도입되어, 주교는 고백의 기도(전능하신 하느님과…; Confiteor)를 마치고 수대를 제대 위에 올려 놓았다. 이러한 내용은 기욤 뒤랑(굴리엘모 두란도)이 13세기 문헌에 기록하였다.[참고자료: Mario Righetti, Storia Liturgica, I권, p. 618-621 참조] 당시 일부 지역에서 주교는 제의실에서 성당으로 들어가면서 수대를 왼쪽 손목에 걸치지 않고 출발하였고, 주교의 수대는 예절장(Magister Caeremoniarum: 약어 MC)이 들고 출발한다. 주교는 제단 앞에 서서 바치는 첫 번째 기도 다음에 수대를 건네받아 왼쪽 손목에 걸친다. 이 경우 수대는 행렬을 정돈한 다음 미사 전례를 시작하는 표지로 주교에게 건네졌다.[참고자료: 이탈리아 위키피디아, “Manipolo (cattolicesimo)”]  예절의 시작을 알리는 이러한 수대의 용도는 제한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에는 서양 교회의 제의실 옆에 마련된 작은 종을 울려 미사 시작을 알리는 경우가 많다.

[수대의 영성적 의미]

1. 메츠의 아말라리오(+814년)는 수대를 거룩한 용도의 Sudarium(1. 땀 닦는 수건 또는 2. 죽은 이를 염할 때 덮는 천 또는 3. 그리스도의 얼굴이 남아 있는 베로니카의 수건)으로 묘사하고 있다. [참고자료: Mario Righetti, Storia Liturgica, I권, p. 618-621 참조] 메츠의 아말라리오는 그의 스승인 알퀸(+804년)함께 우의주의(Allegorismus; 아래 참조)의 대표적 인물이다. 위 메츠의 설명에서 수대를 거룩한 Sudarium이라는 해석은, 1. 땀 닦는 수건 이라는 실용적인 측면보다는 2. 죽은 이를 염할 때 덮는 천 또는 3. 그리스도의 얼굴이 남아 있는 베로니카의 수건으로 알아들을 수 있겠다. 곧 수대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닦아드려 그 얼굴이 새겨지거나 혹은 돌아가신 주님의 얼굴을 덮어드리는 수건을 뜻할 수 있다. 당시에 수대를 그리스도를 닦아드리거나 장례 때 덮어드린 수건으로 그 뜻을 새겼다면, 수대로 자신의 땀과 눈물을 닦는 것을 통하여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스스로 동참하려는 영성적 의미를 표현하였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 우의주의(Allegorismus, 알레고리, 寓意)는, 전례 분야에서는, 전례적 상징과 표징의 의미를 이상하고 환상에 찬 성경적 접근을 통하여 설명해 보려는 시도를 말한다. 그러나 결국 우의적 해설은 전례 예절을 한낱 대중적인 구경거리의 하나로 전락시키게 된다.

2. 후대의 우의주의자들은 수대에서 눈물과 땀을 닦는 수대의 본래의 용도에 ‘사제직의 노고’라는 영성적 의미를 덧붙였다. 이러한 의미 부여는 수대를 착용할 때 바치는 기도에 반영되어 있다.(로마 미사 경본, 1962년판까지)

주님, 수고의 삯을 즐겁게 받도록 제가 눈물과 고통의 수대를 기꺼이 지게 하소서

(Merear, Domine, portare manipulum fletus et doloris: ut cum exultatione recipiam mercedem laboris.) [이 번역은 공식 번역문이 아니며, 이해를 돕기 위하여 제가 번역해 본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수대에 관한 답변과 함께 ‘수대의 용도와 영성적 의미’에 관한 이 글을 덧붙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강복을 빌면서, 2012년 3월 3일, 장신호 신부 드립니다.]

참고 사진(위키피디아) 바로가기: http://pt.wikipedia.org/wiki/Man%C3%ADpulo

 

 

장신호 신부 작성
대구 출생(1966년). 교황청 성 안셀모 대학 전례학 석사(1996년 9월 ~ 1998년 8월) 학위 취득.사제수품(1998년 8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대구대교구 봉덕성당 보좌신부(1998년 9월 ~ 1999년 8월).교황청 성 안셀모 대학 전례학 박사(1999년 9월 ~ 2002년 2월) 학위 취득.대구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2002년 3월 ~ 2009년 8월).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전례서 편찬 담당(2009년 9월 ~ 2012년 현재).이메일janglitu@gmail.com

2 Responses to 수대(手帶)의 용도와 영성적 의미

  1. 아..그렇군요…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진
    이진 2012년 3월 9일 at 9:28 am 응답
  2. 저도… 감사드립니다… ^^*

    박지연 로사 2012년 8월 21일 at 11:12 pm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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