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말씀이 아버지의 영원한 침묵에서 태어났다고 여깁니다. – 미사에도 침묵이…(1)

어느 날 수도원에서 수사들이 어떤 성경 구절의 뜻을 놓고 토론을 하다 나이가 많은 학자 수사님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수사님은 그들에게 그 성경 구절이 있는 곳을 보여 달라고 한 다음 “여기에 무엇이 보입니까?”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이어서 수사님은 말하였습니다. “글자는 검고 나머지 부분은 흽니다. 글자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뜻 가운데 절반을 담고 있습니다. 다른 반쪽은 글자들 밖에 있는 흰색 빈자리에 들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말과 침묵, 움직임과 멈춤 사이에도 해당합니다. 교회는 말씀이 아버지의 영원한 침묵에서 태어났다고 여깁니다. 침묵은 말씀이 태어난 집이고 말씀의 모태입니다. 묵시록은 “천상 전례”에서 지키는 침묵을 보여주며 전례 안에 있는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린양이 일곱째 봉인을 뜯으셨을 때, 하늘에는 반 시간가량 침묵이 흘렀습니다. “(묵시 8, 1). 그러므로 전례에서 침묵은 반드시 필요하고 근본적인 부분입니다. 예식을 꾸미는 장식품이 아니므로 주례가 판단해서 생략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전례에는 침묵을 지켜야 할 때와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전례 거행에 있는 침묵의 성격과 유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마음을 모으는 침묵이 있는데, 이는 회중 전체가 하느님 현존 앞에 있음을 자각하고, 마음으로 개인 기도를 바치는 시간입니다. 이 침묵은 흔히 “기도합시다”라는 권고의 말 뒤에 지키고 보통 주례의 맺는 기도로 이어집니다. 미사의 본기도가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참회 행위 때 하는 양심 성찰도 이러한 침묵 기도에 속합니다. 마음을 모으는 침묵에는 예식을 시작할 때 침묵으로 기도하는 경우도 들어갑니다. 성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을 시작할 때 하는 침묵은 매우 장엄한 형태입니다. 회중은 침묵 가운데 사제를 맞이하며, 사제가 바닥에 엎드릴 때에도 침묵합니다. 이 때 침묵은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수난 신비 안에 들어가도록 도움을 주고, 나아가 수난하신 주님께 바치는 존경과 봉헌의 뛰어난 표지가 됩니다. 말이나 음악으로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다음으로 주례가 중요한 기도를 바치는 동안 그와 영적 일치를 이루며 기도의 내용을 듣고 새기는 침묵이 있습니다. 가장 좋은 예는 미사의 감사기도입니다. 사제는 백성에게 향하는 하느님 목소리를 드러내며 하느님께 마음을 올리는 백성의 목소리를 드러냅니다. 한편, 서품 예식에서 서품을 받을 후보자 머리에 안수를 할 때 “모두 침묵을 지키며 성령께서 내려오시도록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당연히 성가나 연주로 기도를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하느님 말씀과 관련된 묵상 침묵이 있습니다. 말씀 전례를 시작하기 전, 첫째 독서와 둘째 독서 다음, 강론 다음에 침묵을 지킵니다. 신자들은 침묵 가운데 들은 말씀의 내용을 마음에 새기며 말씀과 일치합니다. 이러한 침묵 묵상은 하느님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 머물며 열매를 맺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의 특별한 형태로 흠숭의 침묵이 있습니다. 신자들은 성체 앞에서 있게 될 때 침묵으로 깊은 흠숭의 기도를 바칩니다. 침묵 가운데 영성체를 준비할 때나 성체를 모신 뒤 침묵하며 내 안에 오신 주님과 하나를 이루는 시간도 흠숭 기도입니다. 성목요일에 사제와 신자들이 함께 침묵 가운데 성체께 조배하는 예식도 이 기도의 표현입니다. 마찬가지 성 금요일 십자가 경배 예식에 동반하는 침묵도 흠숭 기도입니다.

 

원제: 미사에도 침묵이…(1)    

( To be continued… )

 

 

심규재 신부 작성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교황청립 전례학 연구소(로마 성 안셀모 대학)박사학위, 수도자 신학원(서울)전례학 교수 역임,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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