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특별한 자리로 사막을 내세웁니다. – 미사에도 침묵이…(2)

침묵은 단순하게 말을 하고 듣기 위해 소리를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또 다음 예식을 멍하게 기다리는 시간도 아닙니다. 치열한 영의 시간입니다. 곧, 침묵은 기도와 같은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마음을 여는 것이고 자신과 깊이 만나는 기회입니다. 기도의 멈춤이 아니라 기도가 흘러나오는 샘이고 기도가 모아지는 정점입니다. 그러므로 침묵은 전례에서 하느님 앞에 있는 올바른 방식이며 가장 어울리는 찬양과 흠숭의 언어입니다. 파스카 성야 예식에서 독서 뒤에 하는 화답시편을 침묵으로 대체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한편, 침묵은 기도의 분위기를 북돋아 줍니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특별한 자리로 사막을 내세웁니다. 사막의 특징은 여러 가지지만 침묵과 고요가 두드러집니다. 사막에 가면 일상의 소음과 걱정과 분주함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렇듯 침묵은 일상과 자신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만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침묵은 마음 안에 성령의 울림을 가득 받아드리고 개인 기도를 하느님 말씀에 더욱 밀접하게 일치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시간전례서 총지침). 예수님께서도 아버지와 대화하기 위하여 침묵을 찾으십니다.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마르 1, 35). 전례 거행은 기도, 곧 하느님과 만남이며 대화이기에 침묵이 그 바탕을 이룬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전례에서 침묵을 지키는 것은 신자들을 소극적인 구경꾼으로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전례에서 올바로 침묵을 지키면 공동체는 한마음이 되고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신비스러운 예식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침묵은 비록 겉으로는 예식에 덜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식에 더욱 깊이 있게 참여하는 것이고, 예식 거행을 더욱더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전례에서 침묵의 순간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르친 “능동적 참여”를 잘못 이해한 결과입니다. 공의회는 신자들의 능동적 전례 참여를 위해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증진하도록, 백성의 환호, 응답, 시편 기도, 따름 노래, 성가와 함께 행동이나 몸의 동작과 자세를 중시하여야 한다. 또한 제때에 거룩한 침묵도 지켜야 한다.” (전례헌장 30). 주례와 봉사자들에게는 회중의 침묵 기도를 빼앗거나 방해할 권리가 없습니다. 특히 주례는 스스로 침묵 기도에 젖은 “침묵의 스승”이 되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원제: 미사에도 침묵이…(2)

( To be continued… )

 

 

심규재 신부 작성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교황청립 전례학 연구소(로마 성 안셀모 대학)박사학위, 수도자 신학원(서울)전례학 교수 역임,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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